[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랩소디 인 블루', 크로스오버 뮤직의 원조
음악평론가
지금으로 딱 100년 전인 1924년 2월 12일, 뉴욕 애올리언홀에선 ‘현대음악의 실험’이란 제목의 연주회가 있었다. 그 자리엔 라흐마니노프, 하이페츠, 스토콥스키 같은 음악계의 거물까지 참석했고, 제목처럼 20세기의 여러 가지 실험적 음악이 연주되고 있었다. 청중이 서서히 지루해질 때쯤, 클라리넷의 글리산도(음과 음 사이를 미끄러지듯 연주하는 기법) 소리가 들리더니, 이때까지 생각하지 못한 신선한 음향이 홀을 채웠다. 당시 스물여섯 살의 청년 조지 거슈윈(George Gershwin, 1898~1937)이 작곡한 ‘랩소디 인 블루’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거슈윈은 뉴욕에서 보스턴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악상을 떠올려서 2주 만에 이 곡을 완성했다고 한다. 원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작곡한 후, 작곡자 퍼디 그로페에게 부탁해 오케스트라로 편곡해 발표했다.
워낙 유명한 곡이니 만큼 좋은 음원이 많지만, 오늘은 영화 ‘판타지아’ 속 장면을 골랐다. ‘판타지아’는 디즈니사가 1940년 만들어 클래식 애니메이션의 신기원을 세운 영화다. 2001년이 되자 디즈니사는 속편이라 할 수 있는 ‘판타지아 2001’을 내놓았는데, 그 안에 ‘랩소디 인 블루’가 삽입되어 있다. 삽화가 알 허쉬필드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제임스 러바인이 이끄는 시카고 심포니가 음악을 맡았다.
거슈윈은 자신의 음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음악은 그 시대와 사람들에 대한 사상과 영감을 노래해야 한다. 내 사람들은 미국인이고 내 시간은 현재다.” 그래서 이 곡이 “당시의 미국을 묘사하는 음악적 만화경” 같은 곡이라고 했다.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은 “차이콥스키 이후 최고의 멜로디”라고 했으며, 지휘자 월터 담로슈는 “재즈를 귀부인으로 만들었다”라고 극찬했다. 세월이 지나도 ‘랩소디 인 블루’ 인기는 변함이 없다. 한국에선 오래전, 노영심이 쓴 ‘희망 사항’이란 곡의 마지막 부분에 인용되었고, 최근엔 레드벨벳의 ‘버스데이’에도 샘플링되어 쓰였다.
이후 거슈윈처럼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은 ‘크로스오버 뮤직’이라는 이름으로 무섭게 성장했다. 이제 단순히 장르를 섞는다고만 해서 가치가 있던 시대는 지나갔다. 섞는 작업을 통해 무언가 새로운 형태를 창조해야 가치가 있는데, 이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100년 전, 조지 거슈윈이 발표한 ‘랩소디 인 블루’는 오늘날도 여전히 고민해야 할 숙제를 던져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