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왜 책임지는 이가 아무도 없나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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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 역사상 최대 세수 결손
중앙정부 채무·재정적자 눈덩이
민생 현장 곳곳에 악영향 불가피

경제성장 전망치 갈수록 떨어져
물가 폭등까지 겹쳐 서민 한숨
과오에는 상응하는 책임 물어야

근래 도로에 교통경찰이 유난히 눈에 자주 띈다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그게 우연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게도 됐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 부과액이 6322억 원. 2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59%나 급증한 수치다. 과태료 부과 건수로 봐도 1185만 건으로 2년 만에 54% 증가했다. 혹시 세수 결손 때문? 설마 사실일까 싶지만, 그래도 윤석열 정부가 역대급 세수 결손을 각종 과태료 수입으로 벌충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은 충분히 할 수 있겠다.

지난 9월 기획재정부는 올해 국세 수입 계산이 잘못됐다며 재추계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가 당초 계산한 올해 국세 수입 전망치는 400조 5000억 원. 그런데 수정 발표한 금액은 341조 4000억 원이었다. 무려 59조 1000억 원이나 낮춰 잡은 것이다. 감소율이 14.8%로 우리 정부 역사상 최대 폭이다. 항간에서 ‘세수 펑크’라 부를 만하다. 이미 국가의 정책이나 사업은 대부분 기 전망치에 맞춰 짜놓은 형편이라 이런 역대급 세수 결손은 큰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기재부는 세수 오차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며 세수 부족에 따른 민생과 거시경제 영향은 매우 제한적일 것이라는 태평스러운 해명을 내놓았다. 하지만 상황은 그런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당장 나라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지난 8월 기준 중앙정부 채무는 1110조 원을 돌파했고 재정적자는 60조 원을 넘어섰다. 세수 결손으로 국세 수입이 줄어들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돈이 없으니 딴 데서 빌릴 수밖에 없다. 정부가 세수 부족을 채우기 위해 한국은행으로부터 빌린 금액이 올해에만 113조 원이 넘는다. 관련 통계가 전산화된 2010년 이후 가장 많은 금액이다.

나라 살림만이 아니다. 세수 결손 때문에 민생 현장 곳곳에서 곡소리가 난다. 아이들 교육환경이 한 예다. 정부는 전국 유·초·중·고의 교육환경 개선 등을 위해 각 교육청에 교부금을 지원하는데, 올해에는 세수 부족 탓에 당초 편성액보다 10조 원 이상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학생 한 명당 200만 원 안팎의 결손이 발생한다는데, 그만큼 교육의 질이 떨어지게 됐다. 국가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겨지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도 크게 줄었다. 내년도 예산이 올해보다 16.7% 삭감된 25조 9000억 원 규모에 그치는 것이다. 그동안 나라 살림이 아무리 어려워도 연구개발 예산을 깎는 일은 없었는데, 세수 결손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대폭 삭감한 것이다. 각 지방자치단체에도 막대한 피해가 예상된다. 국세 부족으로 중앙정부가 지방에 나눠 주는 교부세가 줄기 때문인데, 실제로 부산시의 경우 2600억 원이 넘는 재정 결손이 불가피한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그대로 복지 등 민생 예산의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우울한 전망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부는 세수 부족에다 국가채무 급증을 이유로 긴축재정을 고집한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정부는 해명하지만, 여하튼 그 여파로 국가 경제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더욱 짙게 드리우고 있다. 우선, 다른 데도 아닌 국제통화기금(IMF)이 우리 경제를 박하게 평가한다. IMF는 지난 10일 한국의 내년 성장률 전망치로 2.2%를 제시했다. 이에 정부는 다른 나라에 비해 그다지 낮지 않은 전망치라고 둘러댔지만, 그렇게 볼 사안이 아니다. IMF는 지난해 10월만 해도 한국의 내년 성장률을 2.7%로 전망했다. 1년 사이에 0.5% 포인트(P)나 끌어내린 것이다. 문제는 이 마저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최근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 등 중동 위기 요인까지 반영하면 성장률 하락세가 더욱 가팔라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전문가들은 이러다가 우리나라도 과거 일본과 같은 지독한 저성장 단계로 진입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렇다면 정부가 물가라도 효율적으로 안정시켜야 민생의 숨통이 어느 정도는 트일 텐데 그렇지도 못하다. “숨만 쉬는데도 돈이 들어간다”고 할 정도로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정부의 긴축재정에도 물가는 물가대로 폭등하니 서민들이 제대로 살 수가 없다.

한스러운 것은 이런 사태에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역대급 세수 결손으로 나라살림과 민생이 결딴날 지경인데, 국가정책을 주도하고 나라살림을 경영하는 직무를 가진 이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그대로 자리를 보전하고 있으니 개탄할 노릇이다. 국가나 조직을 운영하는 기본원리로 흔히 신상필벌(信賞必罰)을 말하지만, 기실 상을 공정하게 주는 일보다 벌을 엄정하게 주는 일이 더 중요하다. 상에 신뢰가 없으면 불만에 그치지만 벌이 잘못에 상응하지 못하면 기강이 흐트러지고 과오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추상같은 벌이 있어야 나라가 살고 국민이 산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니 목하 나라 꼴이 참 고약하게 됐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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