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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다 팔아야 서울 한채
시골 동네 무성리에 사는 청년이 서울에서 살기 위해 상경했다. 그는 알고 있던 선배 형을 만났다.
형은 동생에게 “수락아, 서울에는 왜 왔니?”하고 물었다. 청년은 “형님, 저도 서울에 집을 사서 번듯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러자 그는 “동생아, 서울은 네가 생각하는 곳과 다르다”며 “어서 무성리 내려가라. 네가 서울에서 집을 사려면 네가 살던 무성리를 다 팔아야 한다.”
“네에에~?” 개그 프로그램 ‘서울의 달’에 나오는 한 콩트다.
서울의 집값이 얼마나 비싼지를 말해주는 콩트지만 현실을 그다지 과장한 것 같지도 않다. 서울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아파트 전용 84㎡는 6월에 60억 원에 매매계약이 체결됐다. 방 3개짜리 32평 아파트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시절인 2019년. 한창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던 때였다. 김 장관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집값 좀 잡을 수 있는 대책이 없을까요”하고 물었다. 그도 매우 답답해하던 참이었다. 아무리 부동산 대책을 발표해도 집값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기자가 “금리가 너무 낮아서…”하고 말했다. 당시 초저금리 시대였다. 그러자 김 장관은 “금리는 우리가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 규제와 공급 대책을 함께 써야 하는데, 문재인 정부 마지막에야 공급의 중요성을 알고 대규모 공급 대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파트는 금방 공급되지 않는다. 공급 대책 발표 8~10년 후에야 입주가 가능하다.
2025년 초여름, 서울 아파트 가격이 급등했다. 6월 넷째주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송파구 0.88%, 강남구 0.84%, 서초구 0.77%, 강동구 0.74% 등이다. 1주일 만에 이렇게 오른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값 상승은 저금리에 대한 기대감, 수도권 초집중화, 강남불패 신화, 저조한 신규 주택 공급, 세제 완화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지방 거점도시를 키우지 않고 수도권에만 ‘올인’한 정부 정책 때문이다. 정부가 수도권에 모든 자원을 쏟아부으니 수도권에 사람이 몰리고, 또 사람이 몰린다고 그 대책으로 GTX와 광역교통망, 신도시 등 인프라를 또 만들면서 수도권 초집중의 고리가 반복되고 있다. 지방을 ‘촌’이라고 부르고, 지방에 인프라를 건설한다고 하면 ‘헛돈 쓴다’고 생각하는 정부와 수도권 언론이 기어코 이렇게 만든 것이다.
김덕준 세종취재부장 casiopea@
2025-07-03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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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AI 시대 일과 인재
솔로프러너(Solopreneur). 1인(Solo) 기업가(Entrepreneur)라는 의미의 합성어다. 1인 자영업자 의미로 출발했다가 최근 생성형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1인 스타트업을 지칭하는 용어로 확장됐다. 예컨대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려면 웹 개발자와 디자이너, 마케터, 콘텐츠 제작자 등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제 AI가 소스 코드, 디자인, 제품 설명에 마케팅 전략까지 만드는 세상이다. AI를 잘 다룰 줄 알면 한 사람이 이 모든 역할을 ‘지휘’할 수 있다.
‘커서(Cursor)’ AI를 이용하면 코딩 문외한도 근사한 홈페이지를 뚝딱 만든다. 한글 프롬프트를 이해하고, 무료 회원 제약이 없어 일반인 진입 장벽이 사라졌다. 예컨대 특정 주제의 홈페이지 제작을 명령하면 순식간에 스타일 정보(CSS)와 동적 기능(PHP)까지 갖춘 페이지를 생성한다. “테일윈드 CSS로 세련되게 바꿔.” “푸른색 바탕으로 교체해.” “유튜브 동영상을 넣어.” AI가 주제에 맞춘 이미지와 콘텐츠를 생성하는 것도 당연. 숙련된 조수 여럿의 몫을 수행한다고 보면 된다. 이러니 한 초등생이 ‘커서’를 익혀 45분 만에 ‘해리포터 챗봇’ 페이지를 만들었을 정도다.
IT 업계에 미친 영향은 ‘커서’가 먹통이 되면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접속 불능, AI 기능 미작동 상태가 발생하자 국내는 물론 해외 개발자 커뮤니티에는 “오늘 할 일이 없어졌다”며 난리였다. 특히 “‘유기농 코딩(수작업)’으로 돌아가자(Back to organic coding)”는 푸념도 많았다. 이미 아마존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은 코드의 25%를 AI가 만든다. IT 업계에 대량 해고가 잇따르는 이유다. 반복적이고 단순해서 표준화가 된 업무를 맡는 저연차 보조직이 사라지고 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IT 업체가 몰린 판교·강남에서 신규 채용 공고가 급감했다. AI로 대체 가능한 기존 인력은 희망 퇴직과 전환 교육 대상이다. ‘AI 구조조정’인 셈이다. 하지만 AI·클라우드·데이터 전문 인력, 기획·전략·관리·소프트 스킬 기반 직무는 수요가 급증해 ‘귀하신 몸’이다. AI 관련 전문성에 인간 고유 능력, 즉 창의성을 결합한 융합형 인재는 각광을 받는다. 코딩을 몰라도 창의성에서 뛰어난 인문계 전공자의 생산성이 더 높을 수 있는 세상이다. 챗GPT 충격파로부터 불과 2년 7개월 만에 일과 인재의 개념은 급변했다. AI 기능을 잘 다루는 ‘슈퍼 개인’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김승일 논설위원 dojune@busan.com
2025-07-0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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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부산의 클래식 수준
부산 최초의 클래식 전용 공연장 ‘부산콘서트홀’이 드디어 문을 열었다. 개관 페스티벌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지만 다수의 수도권 매체들이 부산 관객의 공연 감상 태도를 혹평했다. 부산콘서트홀 예술감독인 정명훈의 지휘로 지난달 20일 열린 개관 공연 ‘하나를 위한 노래’에 대한 기사에서다.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가 터져나와 몰입을 떨어뜨린 점은 클래식 감상 문화의 아쉬운 측면을 드러냈다”(J일보), “악장 사이 박수 등 어수선한 분위기는 옥의 티였다”(M경제신문),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져 나온 바람에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H일보)
“이날 아쉬웠던 것은 관객의 감상 매너였다. 협주곡과 교향곡의 악장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터져나와 곡의 진행이 늘어지면서 몰입을 방해했다”(K일보), “악장 간 박수 등 객석의 비(非)매너가 연주자와 관객의 몰입을 깨트렸다”(N통신사)
한 국립예술기관장은 “대다수 관객들이 악장이 끝나기도 전에 박수치는 일이 벌어져 연주자들에게 빈축을 샀을 것”이라고 기자들과 인터뷰했다.
과연 그럴까. 지난 3월 15일 독일 베를린의 ‘베를린 필하모니아 홀’에서다.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를 협연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의 클래식 공연장에서,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이,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와 환상의 무대를 펼쳤다.
그런데 1악장이 끝날 때 예상 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조성진의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을 떠나자마자 객석에서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클래식 ‘규칙’을 모르는 소수의 관객 만이 친 박수가 아니라 거의 모든 객석에서 터져나온 감동의 표현이었다.
박수는 정확히 17초 동안 계속됐고, 조성진은 눈을 지긋이 감고 청중의 환호를 음미했다. 지휘자 야쿠프 흐루샤는 박수가 끝난 뒤 무려 32초를 더 기다렸다가 2악장 지휘를 시작했다.
‘악장 사이에는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클래식의 관행은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공연의 완성도를 위한 지휘자와 연주자들의 노력도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악장 사이의 박수를 곧바로 부산의 클래식 관람 ‘수준’으로 폄하해선 안 될 일이다. 베를린 필에서의 사례 뿐만이 아니라 클래식 공연의 문턱을 낮추고자 하는 세계적 흐름도 거세다.
2025-07-01 [1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