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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해리승 트럼패
카멀라 해리스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선 TV 토론은 해리스 판정승으로 끝났다. 이번 토론이 초박빙으로 전개되는 미 대선 레이스의 판세를 가를 분수령이라는 전망에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첫 무대에 오른 해리스가 노회한 트럼프 벽을 넘을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였는데 결과는 ‘해리승 트럼패’였다. ‘초짜가 놓은 함정에 베테랑이 걸렸다’ ‘해리스가 던진 미끼를 트럼프가 물었다’ 등의 반응이었다. 여론조사 결과도 3명 중 2명꼴로 해리스가 잘했다고 했다. 해리스는 성공적 데뷔로 세계적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공개 지지라는 선물까지 챙겼다.
미 대선에서 TV 토론이 처음 등장한 건 케네디와 닉슨이 맞붙은 1960년 9월 26일이었다. 무명에 가까웠던 케네디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며 경륜과 노련미의 닉슨을 압도했고 최연소 미국 대통령이 됐다. TV 토론은 미디어 정치의 시작을 알렸고 대선 판도를 가르는 주요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1988년 TV 토론은 듀카키스 후보에게 결정타를 날렸다. 사회를 맡은 CNN 앵커 버나드 쇼는 사형제 폐지론자인 듀카키스에게 ‘당신 아내를 성폭행하고 살해한 범인에 대한 사형은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고 듀카키스는 ‘아니오’라고 냉정하게 답했다. 듀카키스가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여론이 일었고 결국 부시에게 패했다.
TV 토론에서 때론 비언어적 요소가 더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1992년 부시가 방청석 질문 도중 손목시계를 쳐다보는 장면은 지금까지도 대표적 토론 실패 사례로 전한다. 2000년 대선에서 고어는 거만하고 참을성 없는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으며 지지율 우위를 지키지 못하고 패배했다. 바이든 후보의 낙마도 결국 TV 토론 때문이었다. 울 것 같은 눈, 초점 잃은 시선, 벌어진 입, 한마디로 대통령의 멍때리는 표정에 미국이 놀랐던 것이다.
미 대선을 바다 건너 남 일처럼 지켜볼 수 없는 게 우리 처지다. 누가 당선되느냐에 따라 외교 지형이 바뀌고 산업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와 해리스의 우세 여부에 우리 증시의 관련 종목이 널뛰기하는 게 현실이다. 이번 토론에도 등장한 북한 김정일에 대한 두 후보의 인식차는 한반도 정세에 직결된다. 미 대선 풍향계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해리스 토론 승리에도 불구하고 미 대선 판도는 여전히 안갯속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50여 일 남은 기간 섣부른 예단보단 지혜로운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2024-09-12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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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생태학살은 범죄"
미국 환경운동가 레이첼 카슨의 책 〈침묵의 봄〉은 무분별한 살충제 사용으로 인해 지구 생태계가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나아가 생태계 파괴가 토양과 물, 야생동물, 그리고 인간에게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도 깊이 있는 논의를 펼친다. 이처럼 지구 생태계에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악영향을 불러오는 파괴 행위를 흔히 에코사이드(ecocide)라고 한다. 이는 환경을 뜻하는 에코(eco)와 집단학살을 의미하는 제노사이드(genocide)를 합쳐서 만든 단어다. 제노사이드는 인간 집단학살, 에코사이드는 생태학살을 뜻한다.
에코사이드의 대표적 사례로는 베트남전쟁 당시 일어난 고엽제 사건을 꼽을 수 있다. 미군은 베트콩의 은신처를 없애고, 유리한 전투환경을 조성할 목적으로 고엽제를 대량 살포했다. 이로 인해 베트남 전체 산림의 5분의 1 이상이 파괴된다. 수백만 명이 고엽제에 노출돼 40만 명이 사망하고, 15만 명의 기형아가 태어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전쟁에서는 제노사이드와 에코사이드가 동시에 일어나 인간과 지구 생태계를 파괴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 환경부는 이 전쟁이 막대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심각한 에코사이드를 일으킨 환경 범죄라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베트남전 이후, 에코사이드를 국제법상 범죄로 규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베트남을 시작으로 10여 개 국가가 자국 법에서 에코사이드를 범죄로 규정하는 법을 제정했다. 유럽연합(EU)에서도 에코사이드 법제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일부 환경단체와 국가는 에코사이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서 처벌할 수 있는 국제범죄로 규정하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최근 바누아투, 피지, 사모아 등 태평양 세 도서국은 ICC에 에코사이드를 범죄로 인정하자는 규정 변경 제안서를 제출했다. 심각한 환경파괴를 일으킨 개인을 법정에 세우자는 것이다. 이들 국가의 주장은 자국의 탄소 배출량은 미미하지만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침수 위기 등 기후변화에 따른 피해가 심각하다는 현실적인 위기감에서 비롯된다.
세계 곳곳에서는 여전히 에코사이드가 자행되고 있다. 심지어 전쟁이 없는 곳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브라질의 무분별한 아마존 산림 벌채, 일본의 원전 오염수 방류도 같은 맥락이다. 환경뿐만 아니라 인간에게도 피해를 주는 에코사이드를 이제 국제범죄에 포함시킬 때가 됐다. 그래야 지구가 산다.
2024-09-1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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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썰물] 막걸리 수난(?) 시대
누구는 막걸리 전성시대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 못 보던 희한한 막걸리가 시중에 넘쳐난다. 밤 막걸리나 땅콩 막걸리 따위는 이미 구식이다. 모히토 막걸리, 밀크티 막걸리, 바질 막걸리, 홍차 막걸리처럼 신선하고 기발한 막걸리가 줄을 잇는다. 한때는 막걸리 특유의 텁텁한 느낌이 싫어 달달한 막걸리를 찾더니, 요즘엔 술을 마셔도 건강을 고려해 마시자며 아스파탐 같은 인공 감미료 없는 막걸리가 인기다. 그리 보면 가히 막걸리의 전성시대라 하겠다.
한데, 요즘 돌아가는 상황이 당혹스럽다. 막걸리에 향료나 색소를 넣는 걸 정부가 허용키로 한 것이다. 기획재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4 세법개정안’에 그런 내용이 담겼다. 지금도 바나나, 초콜릿, 딸기 같은 향료나 색소를 넣은 막걸리 비슷한 술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술은, 비록 쌀과 누룩으로 만들었다 해도, 막걸리가 아니라 기타주류로 분류된다. 막걸리는 주세법에 탁주에 포함되고, 탁주엔 향료나 색소를 쓰지 못한다. 막걸리에 그런 맛을 내려면 실제 재료를 넣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미자 넣은 막걸리는 ‘오미자 막걸리’가 되지만, 오미자 향을 넣었다면 ‘오미자 막걸리’라는 이름으로 팔지 못한다.
정부는 주류사업자의 세금 부담(기타주류는 탁주에 비해 세금이 7배가량 높다)을 줄여 주기 위해 법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전통주 업계는 “우리 술의 가치를 훼손한다”며 지난 6일 막걸리향료색소첨가반대위원회를 발족시키는 등 반발하지만, 한국막걸리협회는 “보다 다양한 막걸리를 값싸게 보급하게 됐다”며 함박웃음을 짓는다. 각종 막걸리에 대한 선택권을 소비자에게 줘야 한다는 주장도 덧붙인다.
다 좋다. 다만 잊지 말았으면 하는 게 있다. 막걸리 본래 맛을 찾는 사람들이 이런 추세에 밀려 역차별을 받는다는 점이다. 옛 어른들은 색소나 향료는커녕 다른 특별한 무엇이 들어간 막걸리를 마시지 않았다. 그냥 쌀로 고두밥을 지어 누룩과 섞어 막걸리를 빚어 동네 사람들과 나눠 마셨다. 전통주라고는 하지만 소박해서 싸고 그래서 서민의 술이었다. 서민의 술이 달고 깔끔할 리 없었다. 시큼하고 텁텁했다. 그래도 시원한 열무김치 하나로 그 맛이 족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고 했던가, 옛것의 날것 그대로 막걸리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 답답함은 어디다 하소연해야 하나. 막걸리를 가만히 놔두지 않고 이리저리 손을 대야 미덕인 시대, 그야말로 막걸리 수난 시대 아닌가.
2024-09-10 [1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