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핵심 기능 ‘공소 유지 의무’ 스스로 포기한 결과 초래”
검찰 내부 비판 목소리 고조
노 대행 등 수뇌부 사퇴 촉구
평검사부터 검사장까지 확산
대검 연구관·법무연수원 교수
“국민·구성원 납득할 설명 요구”
“용산·법무부와의 관계 등 고려”
노만석 대행 발언 알려져 ‘논란’
검찰의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와 관련해 일선 검사장들이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에게 ‘항소 포기 지시 경위·근거’ 등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낸 10일 대검찰청 로비에 직원들이 있다. 연합뉴스
검찰이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에 대한 항소를 이례적으로 포기하면서 평검사부터 검사장까지 검찰 수뇌부를 비판하거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을 맡은 검사들은 실형을 받은 민간업자들에게 수천억 원대 범죄 수익을 안겨준 ‘전례 없는 항소 포기’라고 반발한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검찰청 연구관들은 이날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에게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와 관련한 입장문을 전달했다. 입장문에는 항소 포기 경위 설명뿐 아니라 사실상 사퇴를 요구하는 내용 등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전날 회의를 열고 노 대행의 자진 사퇴를 건의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대검 연구관들은 입장문을 통해 “수사팀 항소 의견을 승인하지 않은 이유, 중앙지검과 법무부 사이에 이뤄진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 관계를 국민과 검찰 구성원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노 대행에게 “검찰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인 공소 유지 의무를 스스로 포기한 결과를 초래했다”며 “거취 표명을 포함한 합당한 책임을 다하길 요구한다”고 밝혔다.
일선 검사장들도 노 대행 비판에 가세하며 사퇴 압박에 나섰다. 검사장인 정유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10일 검찰 내부망에 글을 올려 “노 대행은 책임지고 그 자리를 사퇴하라”며 “검찰 역사를 통틀어 가장 치욕적으로 권력에 굴복한 검사로 이름을 남기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권력에 굴종한 자를 조직의 수장으로 두고 같은 치욕을 감당해야 하는 후배들 입장을 눈곱만큼이라도 생각할 능력이 있다면 ‘저의 책임’이라고 내뱉었으니 책임지고 그 자리를 사퇴하라”고 밝혔다.
검사장인 박영진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10일 출근길에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노 대행에 대해 “일선에 대한 지휘력을 상실했다”며 “그를 존중하겠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이나 검사장급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는 지난 8일 “정권에 부역, 검찰 오욕의 역사를 만든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노 대행에게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신임 검사들을 교육하는 법무연수원 교수들도 10일 “권한대행께서 밝힌 입장은 항소 포기의 구체적 경위와 법리적 이유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아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서 “항소 포기 지시에 이른 경위와 법리적 근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다시 한번 요청드린다”고 밝히기도 했다.
검찰이 대장동 사건 항소를 포기하면서 “7000억원 대 범죄 수익을 안겨주게 됐다”는 비판도 지속되고 있다. 대장동 사건 피고인 5명만 1심 판결에 항소하면서 항소심 재판부에서 더 높은 형이 나올 가능성이 차단됐기 때문이다. 형사소송법상 피고인만 항소할 경우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이 적용돼 따라 더 높은 형을 선고할 수 없다.
검찰 항소 포기로 2심에서 범죄수익을 국고로 환수하는 규모는 최대 473억 원대로 한정됐다. 앞서 검찰은 1심에서 피고인들이 총 7800억 원대 부당이득을 취했다며 전액 추징을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정확한 손해액 산정이 불가능하다며 뇌물액 등으로 473억 3200만 원만 추징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와 공판을 맡은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지난 9일 “1심 재판부는 유사 사례의 법리만을 토대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죄를 무죄로 선고해 추징을 하지 않았다”며 “항소 포기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죄 중요 쟁점(재산상 이익 취득 시기 등)에 대한 상급심 판단을 받을 기회조차 잃었다”고 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끈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지난 9일 ‘대장동 개발 비리 관련자 5명에 대한 1심 판결 항소 필요성’이라는 글에서 수천억 원대 범죄수익 환수가 좌절된 게 가장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1심에서 명확히 판단하지 않은 이재명 대통령 관여 여부도 항소심에서 가려지긴 어려울 전망이다.
한편 노 대행이 대장동 사건 항소를 포기한 데 대해 "용산(대통령실)과 법무부와 관계 등을 고려해야 했다"는 말을 주변에 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대검 연구관들이 노 대행 집무실을 찾아 거취 표명을 요구했을 때 그는 이러한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파악됐다. 노 대행은 "검찰이 처한 어려운 상황이나 용산, 법무부와의 관계를 따라야 했다"며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재검토를 지시했고, 중앙지검장이 항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나 대통령실 항소 포기 지시 여부 등에는 명확한 답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