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영화평론가
영화 '마지막 푸른빛' 스틸컷. ⓒGuillermo Garza·BIFF 제공
제30회를 맞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직 늦더위가 가시지 않은 9월에 개최되었다. 늘 보던 10월의 풍경이 아니라서 그런지 조금은 낯설었지만, 극장을 오가며 영화를 만나는 건 여전히 설레는 경험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을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매년 영화제를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올해 그런 즐거움을 안겨준 작품 가운데 하나가 가브리엘 마스카루 감독의 ‘마지막 푸른빛’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었던 하야카와 치에 감독의 ‘플랜 75’가 떠올랐다. 이 영화는 일본의 근미래를 배경으로 75세 이상 노인에게 안락사를 권하는 정부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이어 카메라는 호텔 메이드로 일하는 78세 ‘미치’를 따른다. 고령이지만 성실히 맡은 업무를 해내는 그녀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호텔 방침에 따라 모든 노인을 해고하겠다는 것이다. 이후 미치는 새로운 일자리를 얻으려 애써 보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어떠한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게다가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도 퇴거 통보를 받으며 미치는 떠밀리듯 ‘플랜 75’를 선택한다.
고령화 사회 다룬 또 하나의 영화
‘플랜 75’와는 다른 접근 흥미로워
접하기 힘든 작품 BIFF 통해 만나
‘마지막 푸른빛’도 고령화 사회를 다루는 영화다. 그런데 이 영화는 ‘플랜 75’와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접근 방식이 사뭇 다르다. 영화는 생산성이 없다는 이유로 노인들을 격리하는 근미래 브라질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테레사’는 은퇴 구역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이송될 날을 기다리며 마음이 요동친다. 누군가는 낙원이라고 말하지만, 테레사에게 그곳은 노인들을 사회로부터 격리하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국가는 노인을 은퇴 구역으로 보내기 전부터 이미 통제하고 있었다. 보호자 동의 없이는 마을을 떠날 수도 없으며, 신분증이 없으면 식료품조차 살 수 없는 신세로 만든다. 영화에서는 노인들이 떠나는 은퇴 구역의 실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지만, 그곳이 어떨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결국 테레사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체제의 억압을 거칠게 폭로하는 방식이 아니라, 탈출 이후의 경험과 만남에 비중을 두고 있다. ‘플랜 75’의 경우 갈 곳 없는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보여준다면, ‘마지막 푸른빛’은 테레사가 길 끝에서 만난 또 다른 노인 ‘로베르타’와 느리지만 함께 나아가고 있는 지점을 그린다는 점이 다르다. 이때 은퇴 구역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테레사의 의지는 위태로워 보이지만, 누군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 듯하다. 특히 영화는 라틴아메리카의 광활한 자연 풍광을 통해 현실의 억압을 넘어서는 듯한 의지를 엿보게 한다. 푸른 달팽이가 등장하는 환각 장면은 테레사의 내면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영화 전체를 은유로 물들인다. 화면비의 제한된 구도는 인물의 고립과 불안을 고스란히 보여주면서도, 그녀의 얼굴과 몸짓을 더 깊이 응시하게 만든다.
‘플랜 75’와 ‘마지막 푸른빛’은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제작되었지만, 고령화 사회가 직면한 질문, ‘노인의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고 있어 흥미로웠다. 전자가 회색빛 디스토피아 속에 내몰린 노년의 비극을, 후자는 비극 속에서도 여전히 푸른빛을 잃지 않으려는 생의 기운을 담아낸다. 그리고 이 다른 두 빛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존엄과 자유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제는 평소 쉽게 만날 수 없는 영화를 접할 특별한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도 있다. 영화라는 매체와 그 배경을 둘러싼 다양한 사유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스크린 속 이야기를 넘어 사회적 맥락, 제도, 그리고 인간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좋은 영화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