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봉지 까보니 10개 중 7개가 비정상” 올해 배 농사 망쳤다
배 봉지 제거 후 일소·열과 피해 확인
대부분 농가서 피해…최대 70% 피해
추석 후 폭염 탓…가공용 활용도 안돼
“재해보험 적용 어려워…개선 나서야”
경남 지역을 비롯한 전국 배 재배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배 열과(표면이 쩍쩍 갈라지는 현상)와 일소(껍질이 검게 타고 내부가 물러지는 현상)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건데, 농작물재배보험 적용도 어려워 농민들이 한숨만 내쉬고 있다.
13일 경남 진주시와 한국배영농조합법인 등에 따르면 최근 진주 관내 대부분 배 농가에서 일소·열과 피해가 발생했다. 진주시의 배 재배면적은 412ha로, 경남에서 제일 넓다. 특히 다른 지역에 비해 수출 농가 비중이 높은 편이다.
진주시 확인 결과 대부분 농가에서 일소·열과 피해가 확인됐다. 일소 피해만 30~40% 발생했으며, 열과까지 포함하면 피해 규모가 최대 70%에 달한다. 배를 10개 수확하면 겨우 3개만 제대로 된 상품이 되는 셈이다.
진주시의 한 배 재배농민은 “폭염으로 인해 사과와 단감에 피해가 많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배까지 큰 피해를 입은 줄은 몰랐다. 배는 봉지에 쌓여 있어 바로 확인이 안 됐는데 수확을 위해 배 봉지를 까보니 배 상당 수가 상품 가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무더위 속에서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너무 허무하다”고 호소했다.
다른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배 주산지 전남 나주를 비롯해 전국적으로 일소·열과 피해가 확산하는 상황이다. 현재 지자체 별로 피해 규모 확인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배 일소 피해는 한낮의 뜨거운 햇빛 때문에 발생한다. 사과·단감과 달리 봉지를 씌우는 만큼 일소 피해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배 봉지 때문에 발생한다.
여름철 과수원 온도가 30도까지 오르면 배 봉지 속 온도는 4~50도에 육박한다. 생장기까지는 폭염 피해가 거의 발생하지 않지만, 수확기는 다르다. 배의 과피와 과육을 붕괴시켜 무름 증상을 유발하는 일소 피해가 나타난다. 올해는 추석 이후까지 35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피해가 커졌다.
여기에 올해는 특히 흔치 않은 열과 피해까지 확산하고 있다. 열과는 마치 가뭄철 강바닥처럼 배 껍질이 이리저리 갈라지는 현상을 뜻한다. 배가 물을 머금은 뒤 곧바로 폭염이 오면 껍질이 모두 찢어진다. 올해 추석을 전후해 비가 자주 왔고 폭염이 이어지면서 열과 피해가 대규모로 발생한 상태다.
배 수확은 추석 전후로 나뉘는데, 성장촉진제를 투입해 일찍 수확한 농가는 그나마 피해가 덜하다. 하지만 당도를 높이기 위해 나무에서 충분한 후숙 과정을 거치는 남부지방이나 수출 농가는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농민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다른 B 품들과 달리, 일소·열과 피해를 본 배는 가공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김건수 한국배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차라리 태풍 피해가 나은 편이다. 못난이 배나 껍질에 흠집이 있는 B 품은 그래도 가공용으로는 활용할 수 있다. 배 주스나 즙으로 가공하면 되지만 일소·열과 피해 과실은 아예 폐기해야 해 고스란히 농민 손해로 남는다. 선별하는데 드는 돈과 노력까지 감안하면 무조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답답해했다.
피해 보상도 어렵다. 일소 피해는 자연재해로 인정돼 보상 대상이긴 하지만 특약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실제 가입한 농민은 거의 없는 상태다. 심지어 열과 피해는 현재 생리 장해로 분류돼 약관상 보상 대상에 포함돼 있지도 않다.
한 농민은 “열과와 일소피해는 연관성이 있지만 하나는 재해고 하나는 생리 장해로 분류된다. 재해보험이 급변하는 농업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