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덕혜옹주를 다시 생각하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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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토요일, 소설 〈덕혜옹주〉의 저자 권비영

소설가

의 북 콘서트가 부산에서 열렸다.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부전도서관에서 개최한 행사였다. 사회와 대담을 맡게 되어 나도 그 행사에 참여했다.

‘덕혜옹주’ 북콘서트 진행

소설은 역사 가깝게 전개

영화에선 전혀 다르게 묘사

역사와 영화간 간극 너무 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인물은

국가 위해 쓰러져간 민초

〈덕혜옹주〉가 출간된 건 2009년 12월 말이었다. 바로 2010년, 경술국치 100주년을 며칠 앞둔 절묘한 시점이었다. 당시만 해도 덕혜옹주에 관한 책은 국내에 단 한 권뿐이었다. 일본인 혼마 야스코의 책을 한글로 옮긴 번역서였다. 그래서 이 소설이 출간되자 대중의 반응이 뜨거웠다. “비참하게 버려진 조선 마지막 황녀의 삶을 기억하라!” 소설의 카피 문구도 사람들의 미묘한 감정선을 건드렸다.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의 비극적인 생애는 망국의 세월을 살았던 선조들의 고통과 설움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1912년, 고종의 막내딸로 태어난 덕혜옹주는 14살 때 강제로 일본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20세 땐 일본인 백작과 원치 않은 결혼을 했다. 정신분열증과 우울증을 앓았던 옹주는 이후 15년 동안 일본의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1962년에야 환국했다. 창덕궁의 낙선재에서 말년을 보냈던 옹주는 1989년에 세상을 떠났다.

〈덕혜옹주〉는 환국 과정과 몇몇 소설적 허구 장치를 제외하고는 기록에 남겨진 덕혜옹주의 일생을 비교적 충실히 따르고 있다. 혼마 야스코의 책과 비교해 봐도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선에서부터 일본식 교육을 받았고 기모노를 입었으며, 10대 시절에 이미 지병이 발병했다. 또한 소 다케유키와의 결혼생활도 잠시나마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일본에서 항일 저항운동에 참여했던 적은 없었다.

덕혜옹주에 대한 역사 왜곡 논란은 2016년 동명의 영화가 개봉된 후 뜨거워졌다. 사실 영화 ‘덕혜옹주’는 제목과 주인공들의 이름만 빌려왔을 뿐, 소설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전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무엇보다도 덕혜옹주가 전혀 다른 캐릭터로 변신한다. 영화 속에서 옹주는 조선인 아이들을 위해 한글학교를 세우고, 강제 징용 노무자들 앞에서 민족혼을 일깨우는 연설을 하며, 국권 회복을 위해 상해 임시정부로 망명을 기도한다. 생모와 궁궐 생활을 그리워하며 자폐적으로 살았던 옹주가 영화에서는 올곧은 여성 독립운동가로 그려지는 것이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옵니다.” 조선인 노무자들 앞에서 옹주가 이 연설을 했을 때, 그래서 공감할 수 없었다. 연설 직후 친일파 한택수에게 뺨을 맞고 쓰러졌을 때도 분노가 끓어오르지 않았다. 영화가 허구적 상상력에 기반을 둔 예술 장르라는 점을 감안해도 역사와 영화 속 인물 간의 간극이 너무 컸다.

지난 토요일의 북 콘서트에서도 역사의식과 관련된 청중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한 여고생은 “그렇다면 학교에서 역사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느냐”라고 물었다. 한 중년 남성은 영화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권비영 작가는 영화의 개작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소설 창작과는 달리 제작비가 엄청나게 소요되는 영화는 대중성과 수익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행사를 마친 후 집에 돌아와 주말 드라마를 시청했다. ‘녹두꽃’에서는 일본 군대에 맞서 봉기했던 전봉준이 체포되어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이몽’에서는 일경에 체포된 의열단 청년들이 고문을 당한 후 죽거나 자결했다.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은 과연 누구일까. 무능했던 황제와 그의 가족이 아니라,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렸던 바로 이분들이 아니겠는가.


황은덕


소설가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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