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이국환 동아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연구실 정리 중 필사기 다룬 책 발견
딸 위해 〈임경업전〉 필사 노부 도움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는 메모 울컥
연구실 책장을 정리했다. 은퇴가 머지않으니 조금씩 책을 솎아 낼 요량이었다. 오랜 세월 쌓인 책들이 한때의 기억을 머금은 채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석구석 꽂혀 있었다. 버릴 책들을 정리하다가, 〈책 읽는 소리〉에서 손길이 멈추었다. 먼지 쌓인 책장 구석에서 24년 전 내가 밑줄 그으며 읽었던 정민 교수의 책을 만난 것이다. 버릴 책으로 분류해 상자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 들었다.
그 자리에 서서 오래전 읽었던 문장들을 다시 더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밑줄 친 부분이 보인다. 밑줄의 길이만큼 애정도 깊었던 듯하다. 유독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라는 글에 오래 머물렀다. 고전소설 연구 과정에서의 소회를 담은 글이었다. 고전소설은 대부분 필사 형태로 전해진다. 필사본은 필사자에 따라 내용이 보태지고 다르게 고쳐지는데, 이를 이본(異本)이라 부르며, 필사본에 따라 놀부 심보 가짓수가 스무 개 남짓에서 일흔 가지를 넘기기도 한다. 소설책을 필사하는 과정은 무척 고단하여, 으레 끄트머리에 필사자의 감회를 적바림하는데, 이를 필사기(筆寫記)라 한다.
이 글에서 정민 교수는 〈임경업전〉의 뒤에 적힌 필사기를 다룬다. 아우 혼인을 맞이하여 어렵사리 친정에 든 딸이 집에 있는 소설책을 필사하여 시댁으로 가져가려 한다. 당시 소설 필사본은 혼수 품목일 만큼 인기가 많았다. 소설은 길었고, 반도 쓰지 못한 채 딸이 돌아갈 날이 닥쳤다. 조바심 내는 딸이 안쓰러웠는지, 아버지는 딸의 사촌까지 동원하여 필사하다 결국 직접 붓을 든다. 마침내 필사가 끝나고, 아버지는 책의 끝에 짧은 글을 남긴다. “노부(老父)도 아픈 중 간신히 서너 장 등서(謄書)하였으니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아비 그리운 때 보아라. 이제 시댁으로 떠나면 언제 다시 친정에 들지 모를 딸, 그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딸은 시댁으로 돌아가 아버지가 남긴 필사기를 보며, 얼마나 울었을까. 병들고 나이 든 아버지가 딸을 위해 소설책을 필사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여, 책 먼지가 머리 위로 내려앉는지도 모르고, 그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내 딸도 어느덧 자라 작년 봄 혼인했다.
난산 끝에 첫딸이 태어난 날이 떠오른다. 초저녁에 시작한 아내의 산통이 새벽까지 이어졌다. 긴 기다림 끝에 아이가 세상에 나왔고, 병원 창밖으로 희붐하게 밝아오던 여명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생의 기쁨은 컸으나, 동시에 아버지가 되었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새벽 서리처럼 내려앉던 날이었다. 딸이 자랄 때, 길 가다 넘어지면 “아빠!”하고 울어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고 한다. 주말 소파에 누워 낮잠을 자면, 내 배 위에서 들숨과 날숨의 물결을 타며 딸도 같이 잠이 들었다. 거실에서 기타를 연주하면, 어느새 분홍색 장난감 기타를 들고나와 불협화음의 합주를 서슴지 않았다. 그 나날을 새겨놓은 사진을 우연히 발견하는 날이면, 나는 하릴없이 눈물이 났다.
얼마 전 딸이 늦은 밤 아내에게 전화했다. 남편과의 심한 다툼에 울면서 전화한 딸 때문에 아내는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한다. 나는 야간 수업을 마친 고단함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후에 아내로부터 그 밤의 일을 전해 들었다. 딸이 “아빠는 이 사실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힘들 때 엄마를 찾으면서도 그 고단함이 아빠에게 닿지 않기를 바라는 딸의 배려가 내게 서운함으로 다가왔다. 그 밤 나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오래된 책은 이제 그만 버리자며 시작한 책장 정리를 멈추었다. 〈임경업전〉을 필사했던 아버지는 딸을 향한 사랑을 차마 직접 말하지 못하고, 아비 그리운 때 보라며 마음을 접어 소설책에 동봉했다. 혼인 이후 야근이 잦다는 딸의 소식을 아내에게 건너 들었다. 바쁜 딸에게 혹여 부담이 될까 싶어 보고 싶어도 먼저 전화기를 들지 못했다. 이 글로 딸을 향한 아비의 마음을 적바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