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트럼프 우상화 지폐
화폐는 교환 수단을 넘어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각국이 화폐, 특히 지폐에 고유의 문화, 역사, 사상, 자연 등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이유다. 지폐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이 나오는 까닭도 비슷하다. 특히 미국 지폐에는 독립과 발전,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헌신한 역대 대통령과 정치인 등이 새겨져 있다.
1달러 지폐 주인공은 미국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이다. 2달러 지폐에는 독립선언서 작성에 큰 역할을 한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나온다. 노예제도를 폐지한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5달러 지폐 주인공이며, 초대 재무장관으로 경제 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한 알렉산더 해밀턴은 10달러 지폐에 등장한다. 20달러 주인공은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달러 지폐 인물을 앤드루 잭슨에서 흑인 여성 인권 운동가인 해리엇 터브먼으로 교체하려고 했지만 트럼프는 집권 1기 때 이 계획을 폐기했다. 50달러에는 남북전쟁 영웅인 18대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가, 100달러에는 독립선언 주요 주창자로 미국 탄생에 기여한 정치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각각 나온다.
미 재무부가 트럼프의 초상화가 담긴 250달러 지폐 발행을 추진 중이다. 건국 250주년을 기념한다고 하지만, 현행법은 생존 인물이 화폐에 등장하는 것을 금지한다. 지난해 2월 ‘트럼프 250달러 법안’이 연방하원에서 발의됐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해당 화폐 발행의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에서 재무부가 무리한 시도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재무부 인사들이 조폐국에 트럼프 초상화가 들어간 250달러 지폐 시안 제작을 압박해 왔다고 보도했다. 지폐 시안에는 중앙에 트럼프 얼굴이 있고 양옆으로 대통령과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서명이 배치돼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연방기관과 정책 명칭마다 대통령 이름을 붙이고 있다. 대표 공연장인 케네디센터는 ‘트럼프-케네디센터’로 명칭을 바꿨지만, 지난달 29일 법원 판결로 제동이 걸렸다. 연방정부의 어린이 자산 형성 프로그램은 ‘트럼프 계좌’로 명명했다. 100만 달러(약 15억 원)를 내면 영주권을 부여하는 비자 제도를 ‘트럼프 골드카드’로 명명한 것, 미 해군 신형 전함에 ‘트럼프급 전함’이란 이름을 붙이는 시도도 같은 맥락이다. 개인 브랜드를 높이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광폭 개명’ 행보와 ‘셀프 우상화’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