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욱의 글로벌 산책] 미국 의존도를 줄이자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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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중국 공급망 과의존 문제가 가고
미국 변덕에 고통받는 시대 돌입
다변화 균형점 모색 전환기 도래

최근 국제정세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불확실성’이다. 특히 아이러니한 점은 냉전 이후 국제 질서를 설계하고 유지해 온 미국이 이제는 국제사회의 가장 큰 불확실성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국제사회의 핵심 화두는 중국 공급망 의존 문제였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전략경쟁 심화 과정에서 미국, 유럽연합(EU), 일본은 모두 중국 중심 공급망 구조의 위험성을 체감하였다. 희토류, 배터리, 반도체, 핵심 광물 등 전략 산업에서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우려가 확산되었고, 이에 따라 ‘디리스킹(De-risking)’ 전략이 본격화했다.

그러나 2026년 현재 국제사회의 고민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중국 뿐만 아니라 미국 의존 리스크 자체가 새로운 글로벌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은 동맹국들에 대해서조차 예측 불가능한 통상·안보 압박을 반복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EU산 자동차 관세 문제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이후 미국의 중동 파병 협조에 비협조적인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기존 15% 수준에서 25%까지 인상하겠다고 발표하며 유럽 자동차 산업을 강하게 압박하였다. EU 자동차 업계는 큰 충격에 빠졌고, 유럽 내부에서는 “동맹국에게도 언제든 경제적 압박이 가능하다”는 위기의식이 급속히 확산되었다. 더 나아가 미국은 독일의 중동 및 대미 안보 협력 태도를 문제 삼으며 독일 주둔 미군 5000명 감축 방침까지 검토·발표하면서 유럽 안보 지형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의 예측 가능성이 크게 약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는 관세 인상을 강하게 발표했다가도 다시 시행 시점을 7월 4일까지 연기하는 등 매우 변덕스러운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는 단순히 높은 관세 자체보다도 “내일 어떤 결정이 나올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훨씬 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결국 글로벌 기업들은 특정 국가 의존보다 ‘정책 리스크 분산’ 자체를 새로운 생존 전략으로 고민하기 시작했다.

최근 중동 상황 역시 미국 중심 안보 질서의 한계를 보여준다. 본래 안전 보장을 위해 운영되던 중동지역 내 미군 기지들이 오히려 공격 목표물이 되면서 미군기지를 유치한 국가의 무고한 민간인 희생이 확대되는 역설적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과거에는 미군 기지가 안정의 상징이었다면, 이제는 지정학적 충돌 시 가장 먼저 공격받는 전략 시설로 인식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주요 국가들은 비교적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U는 감정적 대응보다는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과 협력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에너지·방산·첨단산업 분야에서 독자적 역량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장기 제재 체제 속에서도 중국·인도·중동과의 협력을 확대하며 새로운 경제 네트워크를 구축 중이다. 중국은 미국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면서도 공급망·희토류·배터리·AI 경쟁력을 장기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일본 역시 방위력 증강과 함께 경제안보 차원의 공급망 다변화를 조용히 추진하고 있다.

한국 역시 복합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한국 안보의 핵심축이다. 그러나 동시에 중국은 최대 교역국이며, 중동은 핵심 에너지 공급처이다.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 미중 갈등, 중동 리스크,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한국 경제와 산업에 영향을 주고 있다. 결국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 자체가 위험이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특히 한국과 같은 무역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이러한 변화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조선, 철강 등 한국의 핵심 산업은 미국·중국·EU 시장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와 관세 압박은 단순히 수출 감소 문제를 넘어 글로벌 투자 전략과 공급망 구조 자체를 흔들 수 있다. 심지어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정책은 미국 대통령의 변덕스럽고 즉흥적인 정책 발표에 따라 갈팡질팡하고 있다.

과거 국제사회는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디리스킹을 논의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 뿐 아니라 미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 역시 줄여야 한다는 새로운 목소리가 등장하고 있다. 국제질서가 다극화할수록 국가들은 어느 한 축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기보다 공급망, 시장, 외교, 안보를 다변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

불확실성의 시대일수록 중요한 것은 냉정함이다. 국제정치는 감정이 아니라 국익으로 움직인다. 그리고 지금 세계는 미국 중심 질서의 균열 속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거대한 전환기 한가운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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