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사라진 황금사자상
이탈리아의 베니스는 세계 문화예술계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닌 도시다. 매년 혹은 격년마다 전 세계 예술가와 영화인, 건축가들이 이곳으로 몰려드는 것은 그 이름만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국제 행사들 때문이다. 이 중 1895년 시작된 베니스 비엔날레는 각국이 경쟁하는 ‘미술 올림픽’으로 불릴 만큼 세계 최고 수준의 국제 미술 행사로 꼽힌다. 1932년 출범한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세계 최초의 국제영화제로 기록된다.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 역시 세계 건축 담론을 이끄는 무대로 명성이 높다. 분야는 달라도 모두 베니스라는 도시 브랜드 아래 성장하며 세계 문화예술의 흐름을 견인한다.
이들 행사의 또 다른 공통점은 최고상이 모두 황금사자상이라는 점이다. 이 상은 우리에게도 낯익다. 2012년 김기덕 감독은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았고, 2014년 제14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건축전에서는 한국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런데 왜 하필 사자일까. 기원은 베니스 공화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중해 무역을 지배했던 베니스는 성경 ‘마가복음’의 저자 성 마르코(마가)를 도시의 수호성인으로 삼았고, 초기 기독교 전통에서 마가는 날개 달린 사자로 상징됐다. 오늘날 베니스 곳곳에서 황금 또는 청동 사자상을 쉽게 볼 수 있는 이유기도 하다. 결국 황금사자상은 성 마르코의 날개 달린 사자에서 비롯된 것으로 베니스의 역사와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최근 개막한 제61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적잖은 아쉬움을 남긴다. 상징과도 같던 황금사자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국제 분쟁을 둘러싼 논란 속에 심사위원단 5명이 전원 사퇴했고, 결국 최고상 폐지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졌다. 이들이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기소된 지도자가 있는 러시아와 이스라엘을 수상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힌 지 불과 일주일 만이었다. 대신 비엔날레 측은 폐막일인 11월 22일 일반 관객 투표로 수상자를 결정하는 ‘관객상’을 신설했다.
예술은 현실과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다. 시대의 아픔과 사회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도 예술의 역할이다. 그렇다고 예술이 정치적 갈등에만 갇혀서도 안 된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함께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세계 예술인들의 꿈이었던 황금사자상이 지구촌 혼란 속에 제자리를 잃은 모습은 그래서 안타깝고 씁쓸하다. 전쟁이 미술 올림픽에까지 깊은 상처를 남긴 셈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