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승훈 근현대역사관 학예연구관 “좋은 전시는 유물이 아니라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최근 ‘큐레이터의 기획법’ 출간
26년 실전 경험과 노하우 전수
큐레이터,마케터,기획자에 도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지난해 12월 관람객 수 600만 명을 돌파하며 전 세계 박물관 입장객 수 4위를 차지했다. 루브르, 바티칸, 대영박물관 오직 3곳만이 앞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국립중앙박물관을 향한 전 세계인의 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할 수 있다. 2026년 현재 한국의 국공립사립박물관을 모두 합하면 1000개에 달하며, 박물관에서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가 1만 명에 이른다.
대한민국은 1000개의 박물관, 만 명의 큐레이터가 왕성히 활동하는 문화 강국이다. 그러나 숫자 비교를 넘어 각 박물관이 진행하는 전시의 질, 기획 방향 등을 따지면 수준이 천차만별이다. 물론 국립중앙박물관은 한국 최고의 유물들이 다 모여 있어 돌아가며 그걸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된다. 그러나 대다수 박물관은 그 정도의 유물을 보유하지 못하고 심지어 큐레이터 혼자서 박물관 운영과 기획을 모두 맡는 곳도 많다.
“역사 관련 책을 다수 출간했고, 그중 몇 권은 상도 받고 인기 서적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한 후배가 박물관과 큐레이터에 관한 책도 써 달라고 진지하게 부탁했습니다. 후배는 전시 기획에 관해 참고할 만한 책이 없고, 이를 전문적으로 가르쳐주는 곳도 없으니 많은 큐레이터가 현장에서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제야 내가 지난 26년간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알게 된 전시 기획과 준비 요령이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근 〈큐레이터의 기획법〉이라는 책을 발간한 유승훈 부산근현대역사관 학예연구관이 전한 책의 시작이다. 후배의 말을 듣고 유 연구관이 직접 조사해 보니 그간 박물관 이론서는 많이 출판되었지만, 정작 큐레이터가 실제로 전시를 기획할 때 참고할 만한 실용서는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큐레이터가 무엇을 보고 어떻게 판단하며 전시를 설계해야 하는지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풀어낸 실전 안내서를 쓰게 된 것이다.
“시대가 변하며 단순히 유물을 보여주는 전시는 관람객에게 감흥을 줄 수 없습니다. 요즘 박물관은 스토리텔링은 기본이고 설치미술과 음악, 영상이 결합해 온몸으로 체험하는 전시로 변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립민속박물관의 ‘종가’라는 전시는 전시실을 통째로 종갓집 내부로 만들어 관람객은 안채를 비롯해 사랑채 등 가옥 구조부터 종가에서 내려오는 정신과 철학, 유물이 어떻게 결합해 대대로 이어지는지 직접 알 수 있었습니다.”
유 연구관은 유물, 스토리, 디자인, 글쓰기라는 네 가지 요소를 결합해 나만의 주관과 안목을 거쳐 명확한 메시지가 전해지는 스토리텔링 전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요즘에는 박물관과 큐레이터의 사회적인 참여, 메시지도 아주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모 박물관의 ‘쓰레기 사용 설명서’라는 전시가 큰 관심을 받은 게 이런 이유다. 인과관계가 있는 스토리를 짜고 이에 맞게 전시를 몇 부로 나눌지 결정한 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전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아이디어를 찾아 기획서를 써보고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하는지 직접 해보는 코너도 책 안에 있습니다. 큐레이터의 교과서 역할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큐레이터뿐만 아니라 홍보 담당, 행사와 전시 기획, 마케터에게도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많다. 유물이 많지 않거나 지방의 작은 박물관도 히트 상품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