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팅은 마주침과 실험, 돌봄의 조건을 만드는 일”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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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부산비엔날레를 향한 첫 목소리
에블린 사이먼스·아말 칼라프 전시감독
관계, 신뢰, 지속의 큐레이팅 견해 밝혀
“비엔날레, 급진적 교육의 장이 되어야”
불협화음 속 협력, 차이의 생산성 언급
비엔날레 이후 위한 남길 유산 고민도


4월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 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공동 전시감독인 에블린 사이먼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4월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 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공동 전시감독인 에블린 사이먼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비엔날레는 언제부터 전시보다 먼저, 전시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을 묻는 자리가 되었을까.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불협하는 합창’을 앞두고 열린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은 오는 가을 개막을 앞둔 비엔날레를 준비하며 동시대 전시의 의미를 새로 묻는 자리였다.

다할 강연장을 가득 채운 100여 명의 청중은 공동 전시감독 에블린 사이먼스(벨기에)와 아말 칼라프(영국·바레인)뿐 아니라 독립 큐레이터, 미술관 학예연구사 등 다양한 실천가들이 제시한 ‘오늘날 비엔날레는 세계와 지역을 잇는 장을 넘어 무엇을 사유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공유했다. 특히 이 자리는 지난해 7월 (사)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가 칼라프와 사이먼스 여성 듀오를 2026 부산비엔날레 전시감독으로 선정했다고 발표한 뒤 처음으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 더욱 기대가 컸다. 4시간이 넘도록 진행된 포럼에서 대부분의 청중은 자리를 지켰고, 앞다투어 질문을 쏟아냈다.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 행사가 열리고 있다. 김은영 기자 key66@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 행사가 열리고 있다. 김은영 기자 key66@

먼저 발제에 나선 사이먼스는 ‘조건을 만드는 큐레이팅’을 화두로 삼았다. “단 한 번도 큐레이팅을, 작품을 단순히 배열하는 일이라 생각한 적이 없다”는 그는 “큐레이팅은 마주침을 위한, 실험을 위한, 돌봄을 위한 조건을 세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처럼 전시는 더 이상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작가·관객·환경이 함께 구성하는 ‘살아 있는 생태계’로 작동한다.

그가 이번 전시 주제인 ‘불협하는 합창’을 통해 탐구하려는 것은 ‘언어 이후의 소통’이다. 사이먼스는 “언어가 이제 이해의 도구가 아니라 왜곡의 수단이 되는 시대다. 하지만 소리, 진동, 파동은 여전히 감각적이고 직접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한다”며 “사운드·음악·영상 설치를 기반으로 여러 도시의 작가들과 협업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산이라는 장소를 타 지역과 연결하는 전시 구조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4월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 행사가 열리고 있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4월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 행사가 열리고 있다.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벨기에 브뤼셀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그는, 한때 제도권 진입이 어려운 ‘문화 노동자’로서의 경험을 돌이키며 지속 가능한 실천의 조건을 모색해 왔다고 말했다. “결국 나의 큐레이션은 생존과 실험의 사이에서, 관계와 돌봄으로부터 출발한다.”


4월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 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실시간 화상으로 참여한 아말 칼라프 전시감독.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4월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 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실시간 화상으로 참여한 아말 칼라프 전시감독.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화상으로 참여한 칼라프는 보다 정치적이고 제도 비판적인 어조로 발언을 이어갔다. “정치적 폭력과 생태적 위기가 중첩된 시대에 큐레이팅은 오브제를 고르는 행위를 넘어선다. 그것은 경청의 실천이자 신뢰 구축의 행위이며, 정치적 주체성을 복원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는 오늘날의 비엔날레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 ‘급진적 교육의 장’으로 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칼라프가 제시한 실천의 축은 △경청 △장기적 커미션 △협업지향 △공동 제작이다. “신뢰의 속도로 움직이는 큐레이션”이라는 그의 표현처럼, 그는 비엔날레가 단기적인 전시가 아니라 ‘신뢰의 공간’으로 작동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 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임수영 독립 큐레이터 발표 장면. 김은영 기자 key66@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 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임수영 독립 큐레이터 발표 장면. 김은영 기자 key66@

다른 큐레이터들의 주제 발표는 제도와 지역, 협업의 조건이 핵심 주제로 부상했다.

독립 큐레이터 김성우는 “큐레이토리얼은 전시 기획을 넘어 기관의 형식을 다루는 실천으로 확장됐다”며 “이제 큐레이터의 일은 ‘전시를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도와 관계를 비판적으로 재조정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임수영 독립 큐레이터는 “협업에 관한 관한 질문과 시선은 외부뿐 아니라 내부로도 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4월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 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자유 토론 모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4월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 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자유 토론 모습. 부산비엔날레조직위원회 제공

이봉미(민주공원 전시·학예 담당)는 영주맨션 운영 경험을 소개하며 “처음엔 의식하지 못했던 ‘지역’이 관계의 축적 속에서 체화됐다”며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과 관계의 지속성을 위한 조건을 만드는 일”이라 했다.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 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최상호 학예연구사 발표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4일 오후 부산 수영구 도모헌 다할 강연장에서 2026부산비엔날레 ‘큐레토리얼 포럼: 행성적 시선, 다층의 지역’ 행사가 열리고 있다. 사진은 최상호 학예연구사 발표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최상호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제도와 실무의 괴리를 지적했다. “비엔날레가 매번 파국을 면하는 건 구조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큐레이터들이 개인의 헌신으로 제도의 균열을 막아내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 성실함과 노력이 시스템 차원에서 보상받는 구조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모더레이터가 “전시 주제인 ‘불협화음’이 비엔날레 제작 과정에서도 구현되는가”를 묻자, 두 감독은 “불협은 곧 협업의 필연적인 긴장”이라고 답했다. 사이먼스는 “지금까지 큰 불일치는 없었다”며 “함께 의견이 섞이는 패치워크의 과정이 비엔날레의 본질”이라고 말했고, 칼라프는 “의견의 충돌은 나쁜 게 아니라 창조적 긴장을 낳는 요소”라며 “그 차이가 비엔날레의 생명력”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의 말미에서 사이먼스는 “우리가 부산에서 만들 ‘조건’은 아티스트와 관객, 지역의 맥락이 상호 번역되는 과정 그 자체”라며 “모든 것을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불투명함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칼라프는 “비엔날레가 일회적 행사가 아니라 장기적 관계와 신뢰의 시스템으로 남아야 한다”며 지속 가능한 인프라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번 포럼은 비엔날레를 둘러싼 제도와 현장의 불협화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 그 불협이야말로 서로 다른 속도와 언어가 만나 새 질서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불협하는 합창’의 시작은 이미 이 자리에서 시작된 셈이다.

한편 2026부산비엔날레는 오는 8월 29일 개막해 11월 1일까지 65일간 개최된다. 구체적인 전시 공간과 내용, 참여 작가는 내달 1차 발표될 예정이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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