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세상톡톡] 법왜곡죄로 판사를 단죄하겠다면
논설위원
사색만 하면 되는 법철학자와 달리
어떻게든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
국내 법은 자유심증주의 원칙 명기
판사 재량으로 새로운 판결 가능해
법왜곡죄 도입 취지와 크게 어긋나
새 판결보다 법왜곡 방지 중요하면
자유심증주의 없애는 게 더 합리적
“한 여자가 밤에 집에서 아기를 낳았다. 하지만 출혈이 심해 서둘러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심 깊은 남편은 아내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대신 치유 기도를 올렸다. 여자는 결국 숨지고 말았다. 이 경우 남편은 감옥에 가야 하는가?”
독일의 유명 법학자이자 심리학자인 폴커 키츠는 대학 시절 법학 관련 수업을 듣던 첫해 중간고사에 나온 이 시험문제를 똑똑히 기억한다면서 자신의 경험담을 풀어놓는다.
그는 문제를 꼼꼼히 따져본 후 정해진 답이 없다고 생각했다. 시험에 나오는 판결 문제는 역시나 어렵다는 명제를 재확인한 그는 원고와 피고의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진다고 판단했다. 종교의 자유를 우선한다면 신앙에 따라 행동할 수 있으나 구급차만 불렀어도 아내가 살 수도 있었기에 방조죄가 성립할 것도 같았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유죄일 수도 무죄일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답을 적고 유무죄의 두 경우 모두 근거와 주장을 들어 답안을 제출했다.
교수는 그의 답안이 유무죄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며 점수를 깎았다. 화가 난 키츠는 교수를 찾아가 평소 세상 일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고 강조해온 교수가 왜 그러시느냐고 따졌다.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로 법에 대해 그가 가지고 있던 기존 가치관을 흔들었다.
“이 사건은 실제 있었던 일이다. 법철학자와 판사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는가? 법철학자는 와인을 마시며 사건에 대해 얼마든지 사색할 수 있지만 판사는 그럴 수 없다. 판결로 한 사람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것이 판사의 일이다. 이번 시험문제는 당신에게 판사로서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한 것이지 법철학을 물은 게 아니었다.”
1970년대 독일에서 일어난 해당 사건의 판결은 국내 정서와는 사뭇 다르게 최종적으로는 헌법재판소가 종교의 자유에 손을 들어주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 남편이 헌법 소원을 제기하기까지 법원이 내린 결론은 남편의 방조죄 유죄였다.
다소 길게 독일 법학자의 회고를 늘어놓은 이유는 법원이 내리는 판결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과 그럼에도 판결을 내려야 할 수밖에 없는 판사의 고뇌를 돌아보기 위해서다. 굳이 이유를 하나 더 든다면 최근 시행에 들어간 법왜곡죄를 들여다보는 프리즘도 필요했다고 할 것이다.
지난달부터 시행에 들어간 법왜곡죄의 핵심은 형법 제123조에 규정돼 있다. 해당 조항은 법관과 검사 또는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가 특정인을 유리 또는 불리하게 만들 목적으로 고의로 법을 왜곡하거나 조작된 사실관계를 적용하는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과 자격정지에 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법왜곡죄 신설을 추진한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해 찬성하는 측은 법 적용자의 자의적 법 적용을 막기 위해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이들은 판사의 경우 견제받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권력으로서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할 가능성에 노출돼 있어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폴커 키츠의 회고담에서 보듯이 형사사건에 있어 유무죄를 가르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판사는 법철학자와는 달리 어떻게든 유무죄의 결론을 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는 판사에게 ‘자유심증주의’라는 권한을 형사소송법에 부여해 놓고 있다. 자유심증주의는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증거의 가치판단과 사실 인정을 전문적인 법관의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도록 하는 것이다. 법원이 곧잘 내리는 새로운 시각의 판결은 주로 자유심증주의의 산물이다. 법왜곡죄는 이 같은 자유심증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모순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법왜곡죄는 지난달 시행에 들어갔고 대법원장을 1호 대상자로 한 고발이 접수됐다. 법률이 소급 적용되진 않으리라 보지만 법왜곡죄 조항이 더 일찍 생겼다면 어떤 식으로든 법적 결론이 나야 했을 것이다. 사색만 하는 법철학자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해당 사건의 판사는 법왜곡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혹시라도 미래에 새로운 계기로 법왜곡죄가 거꾸로 적용된다면 이번엔 해당 판사가 대상이 되는 무한루프에 빠지지나 않을까. 아니 하급심 결과가 상급심에서 뒤집어지는 경우에만도 법왜곡죄 적용이 가능할 수 있다.
일부 국가는 자유심증주의를 도입하지 않는다. 판사의 자유로운 판단보다 증거 유무에 따른 기계적 판결을 우선시해서다. 우리도 법왜곡죄를 도입한 마당이라면 자유심증주의는 포기해야 맞다. 새로운 시각의 판결을 이끌었던 자유심증주의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게 사회적 합의라면 그래야 한다. 혹시 아는가. 사회적 합의가 기계적 판결에 무게를 둔다면 AI가 판결하는 시대를 더 앞당길 수 있을지.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