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내비게이터] 유칼리, 도달할 수 없는 낙원에 대하여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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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쿠르트 바일. 위키미디어 쿠르트 바일. 위키미디어

“나는 한 가지 스타일에 속하지 않는다. 나는 시대에 속한다.”

쿠르트 바일(Kurt Weill)은 세계 대전으로 황폐한 독일 무대에서 이렇게 외쳤다. 1900년 독일 데사우에서 태어나 베를린음악원에서 공부했으며, 훔퍼딩크, 부소니에게 작곡을 배웠다. 1926년에 배우이자 가수인 로테 레냐와 결혼했고, 오페라 ‘주연 배우’를 성공시키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의 인생은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만나면서 변곡점을 이루었다. 1927년에 두 사람은 노래극 ‘마하고니 시의 흥망성쇠’를 통해 자본주의의 문제를 통렬히 고발했다. 그리고 1928년 ‘서푼짜리 오페라’(Die Dreigroschenoper)로 대성공을 거뒀다. 이 오페라는 바로크 시대인 1782년에 존 게이가 완성한 ‘거지 오페라’를 1920년대 누추하고 소란스러운 독일의 뒷골목으로 옮겨온 작품이다. 음악적으로는 기존 오페라에 트로트, 재즈, 발라드 등 대중음악을 결합한 형태였다. 아리아는 대중적 창법의 노래로 대체되었고, 오케스트라보다는 금관악기와 타악기를 중심으로 한 밴드로 반주를 했다. 대중성과 정치적 풍자를 결합한 혁신적 음악극으로 소문나면서 1933년까지 1만 회 이상 공연을 기록했고 18개국 언어로 번역되는 대성공을 거뒀다.

브레히트와 바일은 이후에도 ‘해피 엔드’, ‘7가지 죄악’ 등의 문제작을 발표하다가, 결국 사상적인 문제로 결별하게 된다. 바일이 음악을 통해 대중에게 더욱 다가가려 했다면, 브레히트는 그 대중을 다시 거리로 밀어내어 비판하고 사유하게 만들고자 했기 때문이다.

1933년에 나치가 정권을 잡게 되자 유대인 출신인 바일은 이른바 ‘퇴폐음악의 온상’으로 분류되었다. 그래서 바일은 프랑스를 거쳐 미국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고, 이후 브로드웨이와 헐리우드에서 활동하다가 1950년 4월 3일, 50세로 세상을 떠났다.

바일의 노래 중에선 ‘서푼짜리 오페라’에 등장하는 ‘칼잡이 맥’(Mack The Knife)이 가장 유명하겠지만, 오늘은 그보다 더 서정적인 곡 ‘유칼리’(YouKali)를 소개한다. 바일이 프랑스로 망명한 직후에 ‘마리 갈랑트’라는 연극에 삽입한 곡이다.

“유칼리, 그곳은 소망의 땅/ 유칼리, 그것은 행복이고 기쁨이지/ 모든 근심을 내려놓는 그곳/ 어두운 밤에 번쩍이는 한줄기 빛/ ... 그러나, 아아, 그것은 꿈, 어리석은 환상/ 유칼리는 존재하지 않아/ 인생은 우리를 질리게 이끌지, 꿈도 사랑도 없이 흘러가 버리지.”

노래의 제목인 유칼리는 실제 지명이 아니라 상상의 섬이다. 평화와 자유와 사랑이 있는 곳이지만 사는 동안은 갈 수 없는 곳, 그곳에 대한 그리움을 탱고와 하바네라 리듬 속에 넣었다. 이름다움과 허무함이 공존하는 노래. 망명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음악가 쿠르트 바일이 남긴 ‘슬픈 낙원’이 여기 있다.

바일: 유칼리 – 바바라 해니건(소프라노) 바일: 유칼리 – 바바라 해니건(소프라노)
조희창 음악평론가. 부산일보DB 조희창 음악평론가. 부산일보DB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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