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물고기 박사’의 지중해 은퇴 여행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신들의 물고기를 찾아서

■신들의 물고기를 찾아서/황선도

‘나는 은퇴자이다.’ 이 책을 여는 첫 문장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간결하다. 이전에 뭘 했던 분인가 경력을 살피니 30여 년간 해양생물을 연구한 ‘물고기 박사’다. 그의 은퇴 후 첫 결심은 최소한 삼시세끼 얻어먹는 삼식이가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이 평범한 이야기가 비범하게 들리는 이유는 ‘삼식이란 물고기의 또 다른 별명이 예비군인데, 나는 민방위도 끝난 사람’이라는 설명이 이어져서다.

그가 은퇴 후 할 일을 고를 때 세운 원칙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하게 만든다. 평생 해왔던 것, 잘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었던 것, 앞으로 살아가는 데 바탕이 될 만한 것, 그리고 청년들이 하지 않거나 할 수 없는 것이다. 청년과의 경쟁은 노욕이라고 생각하는 대목에서 어른의 품격과 지혜가 느껴진다.

황선도 박사는 지중해의 섬 몰타로 <신들의 물고기를 찾아서> 은퇴 유학을 떠난다. 환갑을 넘긴 나이로 대학 캠퍼스 기숙사에 짐을 푼 기분이 어땠을까. 그리고 조지아에서 온 변호사 마리암, 일본 고등학생 레이나, 프랑스 청년 파비앙과 실바인 등 다국적 급우들과 몰타의 곳곳을 함께 누빈다. 인생의 썰물이 시작된 줄 알았는데 지중해의 밀물이 밀려왔다니, 참으로 멋지지 아니한가.

그 밀물의 클라이맥스는 ‘몰타를 찾은 여신’이라는 챕터쯤으로 읽힌다. 여신(?)을 모시고 간 레스토랑에서 토끼 간 요리를 발견하고 시키는 대목이 흥미진진하다. 처음 먹은 문어와 토끼 간 세트에서는 과연 어떤 맛이 났을까. ‘거북이가 빠진 정도의 맛이 났다’니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확실히 감이 잡힌다. 그는 “몰타는 석회암 지질에 강수량이 적어 목초지가 발달하지 않았으니, 토끼를 이용한 요리 문화가 발달했을 것 같다”라고 말한다. 여행기이면서도 과학적이고 인문학적인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지니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500여 쪽 벽돌 책이 만화책처럼 술술 넘어간다.

저자는 낯선 사람과 쉽게 어울리고 인연을 만드는 능력을 타고난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해 그가 ‘사람만큼 다양하고 재미있는 존재는 없는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그 역시도 타고 난 소심한 성격을 이겨내고 싶어 일부러 사람들에게 다가간 것이었다. 얼마 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은퇴 이후에도 무조건 집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라고 했다.

내내 재미있고 부드럽던 그가 때로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젊은이들이여 나가라, 아니, 은퇴자들도 나가라, 낯선 세상 속으로 나아가라, 그곳에서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능력을 길러라. 너 자신만의 모습을 찾아라. 모든 존재 중에서 결코 다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너라는 존재를 스스로 창조하라.’ 처음 하는 은퇴는 누구나 두렵기 마련이지만 저자는 잘못 탄 버스가 경로를 벗어날 때 비로소 새로운 풍경이 보이고, 그 속에 진짜 내 모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에필로그는 ‘은퇴는 독립이다’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은퇴란 가르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들으려는 마음을 배우는 과정이다. 그래야 꼰대가 아닌 한 명의 친구가 된다’라고 하는 등 명언이 줄줄이 이어진다. 주위에서는 희끗희끗한 꽁지 머리를 한 그가 나타나면 바다 내음이 코끝을 스친다고 평가한다. 부산에서도 이 바다 내음을 직접 맡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황선도/씨콤/508쪽/3만 원.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당신을 위한 뉴스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