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래의 메타경제] 대통령의 '숙제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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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대 글로벌경제학과 명예교수

얼마 전 어떤 단체에서 특강을 한 적이 있다. 현재의 부산을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 주요 주제였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먼저 오늘날 대한민국의 세계적 위상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았다. 우리 역사에서 오늘날처럼 큰 힘을 가졌던 때가 얼마나 있었을까. 몇 가지 의견이 나왔지만, 대체로 단군 이래 가장 전성기의 위상에 있다는 점에는 큰 이견이 없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많은 나라들이 경제 성장에 돌입했지만 선진국으로 가는 기차에 탑승할 수 있었던 나라들은 많지 않았다. 중진국 함정이라는 힘든 코스를 이겨내고 거의 마지막 기차에 한국은 탑승하였다. 우리의 성취가 더욱 화려해 보이는 것은 그런 흔치 않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은 시장·정부의 상호보완 성공 모델

이익 향유와 분배 구조까지 고착한 시장

다시 유연하게 만들려면 정부 개입 필요

이러한 우리의 높은 성장 경험은 물론 오래 전부터 경제학의 주요 관심사가 되어 왔다. 외국의 학자들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는데 그들이 특히 주목한 것은 정부와 시장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한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했는지 아니면 적절한 시장 기능의 작동이 더 성장에 기여하였는지에 대한 논의였다.

정부의 개입을 좌파적 정책으로 보고 무엇이든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으로는 경제개발 시대를 평가할 수 없다. 아직 시장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시대였고, 자원의 동원에서부터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을 만드는 것까지 정부에 많이 의존하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경제개발 계획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역할은 특히 중화학 공업화에서 결정적이었다. 정통 경제학에서는 당시 한국의 경제환경에서 중화학 공업화는 적절한 정책 방향이 아니었다. 특히 정통 경제학자들이 많이 포진했던 경제기획원은 중화학 공업화에 미온적인 입장이었다. 경제학의 대진리 중의 하나로 되어 있는 비교 우위론에 입각해 볼 때 중화학 공업화는 가능성이 낮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화학 공업화를 밀어붙인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기획원 대신 상공부와 주로 호흡을 맞추었다. 시장이 받쳐주지 못한 부분은 정부가 나서서 해결하면서 시장 기능을 보완하고 키워나갔다. 중화학 공업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은 지대하였는데, 경제 점검 회의는 마치 초등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숙제 검사를 하는 것과 같았다.

우리 경제의 규모가 좀 커지고 시장이 나름대로 자리를 잡으면서 정부의 개입은 줄어들었다. 특히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함께 정부의 역할보다는 시장에 의한 조율이 전면에 등장하였다. 이 시기는 대체로 지방자치의 부활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정부의 끊임 없는 중재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곳곳에서 정부를 무력화하였다.

산업 정책이 약화되면서 기업들은 수도권으로 몰려들었고, 시장의 이름으로 수도권의 대형 유통점들은 지방 상권을 잠식하였다. 수도권 집중이 불러온 서울 집값 폭등은 정권을 교체할만한 파급력을 가지면서 정부를 압박하였다. 서울 부동산 시장은 시민들의 거처를 중개하는 시장이 아니라 거대한 전국적 투기판이 되어 버렸다.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의 소득 수준이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서고 세계적인 기업들도 상당수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가는 개발도상국 수준에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하였다.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에게 적절히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한국 주식시장의 고질적 병폐가 굳어져 버린 탓이다.

실용을 앞세운 이재명 정부가 들어서면서 많은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무엇보다 큰 성과는 코스피 지수가 5000을 돌파한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 주식시장을 지켜보아 온 투자자들에는 예상 밖의 빠른 성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인공지능이 불을 당긴 반도체 사이클의 조기 도래라는 시대적 운도 따랐다. 그러나 주식시장의 틀을 바꾸려는 노력이 없었다면 코리안 디스카운트라는 고질을 이렇게 빨리 극복할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비정상 상태로 굳어버린 시장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과정에서 산업 정책도 과거보다는 약하지만 부활하고 있다. 지역균형 발전도 산업 정책의 틀 속에서 논의되고 있다. 국무회의를 비롯한 모든 논의 과정들이 투명하게 중계되고, 오래 전에 보았던 대통령의 숙제 검사가 다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한 숙제 검사가 없었다면 해양수산부의 이전도 그렇게 빨리 이루어지지는 못했을 것이다.

경제학 교과서는 말한다. 정부와 시장은 보완적인 존재이고, 시장이 실패하는 곳에 정부가 들어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오랫동안 굳어졌던 시장은 이익을 향유하고 분배하는 구조까지도 함께 고착화하였다. 이렇게 굳어진 시장을 다시 유연하고 효율적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가끔은 정부가 시장을 이겨야 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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