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핑계
이상국(1946~)
어떤 사람이
눈이나 꽃처럼
거저 오는 걸 좋아하면 가난하다는 것이고
가난하면 세상에 미안한 일이 적다
어떤 이는
사람이 살려고
너무 애쓰는 일을 재앙이라고도 했는데
가난하면 사랑하는 자식들이 다툴 일이 없고
세상 떠날 때도 소풍 가듯 가벼워서 좋다
가난은 언제 어디서나 혼자가 아니다
그래서 힘이 세고
가난은 비싸다
사랑과 가난은 감출 수도 없지만
사람들이 대부분 가난하게 사는 데는
다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시집 〈나는 용서도 없이 살았다〉 (2025) 중에서
가난은 ‘간난’(艱難)이라는 한자에서 온 말인데, ‘난’이라는 글자는 진흙밭에 새가 빠져 있는 모습, 즉 힘들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옛말에 가난은 돈 주고 살 수 없단 말이 있고, 가난이 가장 훌륭한 유산이란 말도 있습니다. 모두들 힘든 요즘에 위로가 되는 말일지 모르겠습니다. 잘 살고 싶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을 자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잘 사는 것이 세상에 미안한 일이란 시인의 문장을 되뇌이게 됩니다. 가진 게 없어 잃을 게 없는 가난. 생각해보면 우린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을 살고 있습니다. 이미 잘살고 있는데도 뭔가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느낌은 스스로를 가난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리기도 합니다. 물질적인 것 이외에도 건강한 정신 같은 값진 가치들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길, 잘할 수 있는 길을 걸으면 행복해지고 결코 가난하지 않다는 것 생각해봅니다. 신정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