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세상톡톡] 진짜 터미네이터는 총을 들지 않는다
인간형 로봇의 놀라운 발전 속도
인류 위협 병기 등장 공포감 물씬
하지만 정말 무서운 건 따로 있어
로봇 투입으로 사라질 현장 노동
가처분 소득 끝장내는 파국 초래
자본주의 지탱 고리 끊어질 수도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나서는 피곤함이 묻은 듯한 월급쟁이 가장의 걸음걸이. 무심한 듯하면서도 ‘고인물’(한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해 달인의 경지에 이른 이들을 이르는 속칭)의 시크함이 묻어나는 약간의 건들거림….
지난달 막을 내린 CES를 뜨겁게 달군 현대차 자회사 보스톤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는 이런 동작을 자연스럽게 해 내며 등장했다. 엎드려 있던 모습에서 기괴한 관절 움직임을 통해 일어나는 아틀라스는 이족 보행이라는 인간의 특성을 잘 구현하면서도 확실히 기존 휴머노이드 로봇과는 다른 방향성을 보여줬다. 기존 휴머노이드가 사람의 관절 동작을 최대한 흉내내려 했다면 아틀라스는 로봇만이 가질 수 있는 관절의 자유도를 최대한 넓혔다. 지구의 주인을 자처하는 호모 사피엔스는 이 같은 로봇의 등장에 본능적인 불안을 느끼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보던 ‘터미네이터’가 나타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대표적이다.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쿵푸 동작을 시연하거나 날아차기로 수박을 깨트리는 장면까지 나오는 형국이고 보면 호모 사피엔스의 불안감이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런 장면이 담긴 쇼츠엔 종종 “저런 로봇이 전투에 투입되면 도망갈 수도 없겠다”는 식의 댓글이 달리곤 한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그런 터미네이터의 등장보다는 아틀라스 같은 로봇의 공장 투입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점에 더 큰 불안감을 느껴야 마땅하다. 공장이라는 시스템이 호모 사피엔스와 엮인 의미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물품 제조를 위한 공장이라는 시스템의 의미를 얘기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헨리 포드를 앞세우지 않을 수 없다. 컨베이어를 이용한 대량 생산이라는 포디즘의 창시자로만 포드를 기억한다면 제대로 된 이해를 할 수 없다. 포드의 진정한 혁신은 공장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공장 노동의 가치를 확립했다는 데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공장 노동의 노예가 아니라 주인이 되도록 했다는 말로 바꿔도 무방하다.
1910년대 포드가 자동차 대량 생산 체계를 구축해 판매를 시작하자 여론은 비싼 차를 누가 사느냐며 빈정대기 시작했다. 당시엔 자동차를 상류층의 사치품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에 포드는 “우리 공장 노동자들이 차를 살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일당을 당시 평균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수준인 5달러까지 올리는 조치를 취했다. 그는 이어 공장 노동자들이 차를 몰고 놀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5일 근무제 도입을 주창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노력으로 결국 공장 노동자는 800달러대 가격의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게 됐고 이는 현대 자본주의의 토대가 됐다. 이 같은 포디즘의 핵심은 공장 노동자의 가처분 소득 증대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공산품의 구매로 이어지는 선순환에 있다. 중산층의 확대와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도 이런 선순환 속에서만 구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틀라스를 필두로 하는 공장형 안드로이드 로봇의 출현으로 노동자가 내몰릴 위기에 처하면서 이런 선순환 구조는 근본적으로 해체될 가능성이 커졌다. 로봇 투입 생산이 현대차만 가능하다면 효율성 제고와 비용 절감 등의 혜택을 현대차가 철저히 누리겠지만 조만간 로봇과 AI의 투입은 전 세계 모든 기업 현장에서 ‘뉴 노멀’이 될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일각에선 로봇을 투입하는 회사로부터 로봇세를 걷어들이고 이를 재원으로 호모 사피엔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뉴 노멀에 대비하자는 의견을 내놓는다. 일론 머스크 등 휴머노이드 개발에 혈안이 된 기업가들도 자주 언급하는 내용이다. 기본소득 지급에 우호적인 현 정부가 들으면 솔깃할 주장이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회사가 로봇세 같은 세금을 내기 위해서는 공산품을 팔아 이득을 내야 한다. 하지만 공장에서 밀려난 호모 사피엔스는 공산품을 살 가처분 소득이 없다. 공산품을 팔 곳이 없어진 회사는 수익을 낼 수가 없다. 수익이 없는 회사가 어떻게 기본소득 재원이 되는 세금을 낼 수 있을 것인가.
영화와는 달리 현실에서 터미네이터는 호모 사피엔스를 절멸하겠다며 기세등등하게 총을 들고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현실의 터미네이터는 그보다 더 빨리 기업 현장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노동과 가처분 소득을 끝장내버리는 모습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아틀라스의 공장 투입에 반발하는 현대차 노조를 비난만 하고 있기에는 이미 도래한 현실이 너무 위태하다.
대학 시절 한 교수는 “순식간에 변하는 무게중심을 계산해야 하는 복잡성 때문에 인간처럼 자연스럽게 이족 보행을 하는 로봇의 구현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불과 30여 년만에 거짓이 됐다. 터미네이터는 창졸지간에 곧 나타날 것이다. 그 전에 노동과 가처분 소득의 영역을 살릴 방안을 서둘러 모색해야 한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