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셜 포토그래퍼' 이준희 작가의 부산 향한 ‘낯선 시도’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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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봄 부산행…원도심 정착
사상공단 무용수 몸짓으로 재창조
현재 부산 장애인 스포츠 선수 촬영
"사진이 생각의 각도 1도라도 바꿨으면"

2024년 봄. 한 청년이 서울에서 부산으로 왔다. 큰 키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가 눈길을 끌었다. 그는 원도심에 집을 구하더니 시간만 나면 북항의 바다공원길을 뛰었다. 어느 날 무작정 사상구청을 찾아가 사상공단의 공장에서 춤추는 무용수들의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렇게 공장에서는 만날 수 없는 무용수들의 춤과 그동안 보지 못했던 조명이 더해지며 지난해 연말 <춤추는 사상>이 탄생했다. 사상공단의 공간을 재창조한 이 프로젝트 사진집은 이준희 사진작가의 부산 시민 신고식인 셈이었다. 이번에 함께 나온 에세이 <빛과 디렉션>과 그와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신입 부산 시민이 꾸는 꿈을 따라가 봤다.


세탁소 앞에서 현대무용하는 사진을 찍었다. 이준희 제공 세탁소 앞에서 현대무용하는 사진을 찍었다. 이준희 제공

이준희 작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피아노를 쳤다. 고등학교 때는 밴드부에서 살았고, 대학에서는 실용음악을 전공했다.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음악을 노력만으로 잘할 수는 없었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고 꿈을 접었다. 대신 선택한 것이 사진이었다. 음악만 생각했던 그 오랜 시간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었다. 음악은 사진에 대한 그만의 예술관을 만드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다.

이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책도 좋아했다. 음악을 전공할 때도 도서관이 가장 친숙한 공간이었을 정도였다. 사진을 찍으면서 신기하게도 문학이 더 좋아졌단다. 걷고, 찍고, 보정하고, 블로그에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문학은 책에 나오는 내용을 머릿속에 상상하게 만드니, 사진가의 프레임 구성력을 만들어주는 훈련과도 같았다. 사실 서로 다른 장르의 예술도 알고 보면 본질적으로 공통점이 많다. 직업 사진가가 되고 난 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을까요?”였다. 십수 년간 고민 끝에 한 번에 이해되는 대답을 발견했다. “먹은 만큼 싼다”라는 것이다. 사진가가 자기만의 세계관을 가지고 작가적인 메시지를 내려면 인문학과 예술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금속기계 가공 전문 기업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무용 디렉터의 재치 있는 연출이 돋보인다. 이준희 제공 금속기계 가공 전문 기업에서 촬영한 사진으로 무용 디렉터의 재치 있는 연출이 돋보인다. 이준희 제공

2015년부터 이탈리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스냅 촬영을 했다. 그게 잘 되면서 몇 년간 걱정 없이 살던 때가 ‘리즈 시절’이었다. 스냅 사진은 진입 장벽이 가장 낮은 촬영 분야라는 한계가 있다. 2018년부터 촬영 단가가 내려가더니 예약 건수가 줄어들었다. 결국 짐을 쌀 수밖에 없었다. 2020년 서울로 돌아와 스튜디오를 열었다. 하지만 팬데믹과 동시에 개업한 스튜디오는 실패했다. 동업자에게 사기까지 당하고 2024년 초반까지 악몽 같은 시기를 보냈다.

돈이 되는 일을 찾아 편의점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매장을 쓸고 닦고, 물건을 진열하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을 골라냈다. 점원 중에는 갑자기 연락이 끊기는 사람도 있었고, 몸이 피곤하다면서 상품 발주량을 줄여달라는 청년도 있었다. 또 다른 배움의 현장이었다. 예술가로만 살다가 다른 삶을 살아보니 세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부산 시민들이 의존하는 진짜 삶이 있는 세탁소에서 촬영했다. 이준희 제공 부산 시민들이 의존하는 진짜 삶이 있는 세탁소에서 촬영했다. 이준희 제공

한국에서는 계속 서울 사람이었다. 서울 사람들은 사실 서울에 사는 이유를 생각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 있으니 실력이 있는 사진가도 서울에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은 창의적인 예술가들로 넘쳐난다. 수천만 명의 무한 경쟁이 이 작은 면적 안에서 이뤄지니, 장점도 있지만 모두가 정서적으로 가난해지는 것 같았다. 그걸 견디지 못했다.

부산은 낯선 지역이었다. “부산은 살기는 좋은데, 일이 없어서 문제지.” 부산에 사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면 대다수가 이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부산의 사회적 문제와 예술 콘텐츠의 빈자리는 오히려 사진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펼칠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부산에서 살아간다면 새롭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추려보았다.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부산에서도 삶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2024년 부산 중구 중앙동에 집을 구했다. 부산의 젊은 세대가 수도권으로 향하는 것에 반하는 역주행이었다. 그는 사진가로서 부산에 정착하면서 부산을 에너제틱하게 만드는 사진 작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지역과 산업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상공단에서 쵤영했다. 이준희 제공 지역과 산업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상공단에서 쵤영했다. 이준희 제공

사상은 부산의 산업이 몰려 있었던 지역이지만 빈 공장이 늘어가고 있다. 사상에서는 어떤 예술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가 필요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 이용원, 세탁소…. 촬영 장소 섭외가 가장 어려웠지만 될 때까지 최선을 다했다. 마침내 촬영일. 순간광 조명이 켜지자 공장은 뮤지컬 무대처럼 바뀌었다. ‘새로운 조명이 켜지면 기존의 공간과 지역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그가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춤추는 사상>이 사상의 현재를 알려 지역과 산업을 되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무용수의 유연한 움직임은 생각의 유연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촬영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모니터를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소멸 위기의 지역이라면 어디에서든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라는 게 그의 꿈이다.


장애인 선수들도 멋진 사진을 가질 자격이 있다. 이준희 제공 장애인 선수들도 멋진 사진을 가질 자격이 있다. 이준희 제공

지금은 부산시장애인체육협회와 함께 장애인 스포츠 촬영을 하고 있다. 부산의 장애인 선수들이 “저희를 촬영하러 온 게 처음이다”라고 해서 놀랐다고 했다. 그들도 멋진 사진을 가질 자격이 있는데 왜 그동안에는 한 번도 없었을까. 지난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 때부터 선수들을 그만의 방식으로 찍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종목이 철인3종이라고 했다. 선수들은 750m를 바다 수영으로 완주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과 양팔이 없는 신체장애인 선수들이 파도와 싸우는 장면은 무한한 감동이었다.


조명을 설치해 무대가 된 버스에서 무용수들이 춤추고 있다. 이준희 제공 조명을 설치해 무대가 된 버스에서 무용수들이 춤추고 있다. 이준희 제공

‘춤추는 사상’ 전시회 토크 콘서트장에 그가 사진을 찍었던 선수 몇 분이 왔다. 청각장애인들이었다. 스마트폰 앱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번역해서 열심히 듣는 모습을 보니 그만 목이 메었다고 했다. 이 작가는 “사진 촬영이 끝난 뒤에는 기부 전시회를 열어, 기부금을 열악한 환경에서 훈련하는 장애인 선수들의 훈련 비용으로 후원할 생각이다. 장애인 선수들의 혼신을 다한 몸의 움직임과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력을 예술화해 장애인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바꿔놓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작업을 하는 스스로를 ‘소셜 포토그래퍼’라고 명명했다. 부산에 와서 청년 감소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했고, 이 같은 문제를 사진을 통해 보여 주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소멸 위기의 지역을 알리기 위한 무용수들과의 협업이나 장애인 스포츠 선수 촬영 같은 한국 사진계에서는 낯선 시도를 하는 이유다. 그는 “사진을 통해 이런 문제에 대한 생각의 각도를 단 1도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소셜 포토그래퍼로서 큰 보람이다”라고 말했다.


이준희 작가는 한국에서 가장 괴상한 사진가가 되고 싶어 한다. 이준희 작가는 한국에서 가장 괴상한 사진가가 되고 싶어 한다.

‘맨땅에 헤딩’이라는 말이 있다. 이 작가가 하는 일들이 그렇게 보인다. 그는 “요즘 이마가 무척 아프다. 하지만 부딪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라고 근사한 멘트를 날린다. 그는 “한 명의 사진가가 뒤집어 본 시선을 통해 부산이 얼마나 대단한 에너지를 가졌는지 알게 되면 좋겠다. 우리가 함께 조금만 노력하면 좋아질 수 있는 게 세상에 많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가장 괴상한 사진가이자, 독특하고 이색적인 작품 세계를 가진 사진가가 되고 싶다’라고 큰소리치는 신입 부산 시민을 관심 가지고 지켜보게 될 것 같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춤추는 사상> 표지. <춤추는 사상>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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