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신먼로주의가 부산에 던지는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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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겸 팬스타그룹 회장·한일 의원연맹 자문위원

미국의 ‘전략적 실용주의’와 중일 갈등
동북아에서 해양 질서 불확실성 키워
혼돈 속 요구되는 것은 ‘카오스의 지혜’
해수부 이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자

신뢰는 경제와 민주주의 발전 토대인 ‘사회자본의 핵심요소’라고 로버트 퍼트넘(Robert D. Putnam)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명예교수가 자신의 저서에서 강조한 바 있다. 사회적 신뢰가 높을수록 경제 안정성과 성장, 그리고 민주주의의 성숙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뜻인데, 신뢰의 중요성은 개인이든 사회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이재명 정부는 국가 비전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내걸었고 출범 직후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을 공약했다. 그 약속은 지난 9일 첫 이삿짐이 부산에 도착하는 것으로 지켜졌다. 필자도 해수부 이삿짐이 부산 동구 수정동 임시청사에 도착하는 순간을 직접 목격했다. ‘신뢰’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지를 다시 확인했다.

이제 부산이 화답해야 한다. 해수부라는 정부 기관의 이전을 부산의 사회자본으로 만들어서, 이른바 ‘노인과 바다’로 불린 자조의 도시를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그 사회자본이 해양수도를 넘어 세계의 해양 중심으로 우뚝 서는 동력이 돼야 한다.

시작은 부울경이 함께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아니라 ‘해수부의 부울경 이전’이 맞다. 정부 청사 이전 효과를 부산은 물론이고 울산과 경남이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울산의 조선업은 물론이고 경남의 양식, 해양플랜트, 해양바이오 산업 등이 고도화될 기회다. 지역의 목소리와 현장 상황이 세종이나 서울에 해수부가 있을 때보다 훨씬 더 빠르게 반영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7일 ‘2025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했다. 국제 규범과 다자주의 대신, 미국의 국익과 주권 보호에 초점을 맞춘 ‘전략적 실용주의’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으로 이해된다. 세계 경찰의 종료이며 ‘신먼로주의’의 대두라는 해석도 있다. 미국이라는 국제 경찰이 북한 핵 위협에 대한 비용을 우리에게 전가한 것은 물론이고 동맹국으로서 중국을 견제하라는 함의도 담겼다.

이에 대해 일본이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달 7일 중의원에서 대만 유사시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는데, 이는 곧바로 중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동북아의 화약고로 불리는 대만해협 문제에 그가 너무 깊게 반응하면서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중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을 삼가도록 했고 중국 항공사는 일본행 항공편을 줄줄이 취소했다. 심지어 오랫동안 양국 우호의 상징처럼 각인된 상하이-오사카 여객선 운항도 지난 6일 갑자기 중단됐다.

이들 일련의 사건이 중일 간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체감도가 다르다. 팬스타그룹처럼 동북아 바다를 연결하는 국제 해상수송 업체는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걱정부터 앞선다.

모든 화근은 신먼로주의로 연결되는 것 같다. 미주대륙의 패권을 유지하고 중국을 포함한 외부 세력의 개입을 차단하려는 고립주의 외교정책인 신먼로주의는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유럽의 미주대륙 간섭을 거부한 ‘먼로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신먼로주의가 지금 동북아 바다에 새로운 갈등을 야기하고 얄궂은 경계선을 긋고 있다. 중국의 잇따른 도발에 대한 일본의 도움 요청도 미국은 그 경계선을 가리키며 강 건너 불 보듯 하고 있다. 중일 갈등은 동북아 안보 환경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냈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이 동북아 바다에서 언제, 어떻게 충돌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혼돈의 바닷속에서 끊임없이 요구되는 것은 ‘카오스의 지혜’다. 새로운 질서가 시작되기 직전의 대혼란을 카오스라고 한다면 카오스의 지혜는 그 혼돈과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방향과 해법을 찾는 노력을 의미한다. 각국의 다양한 선택과 견해를 인정하고 경청할 수 있는 국가는, 그래서 어쩌면 대한민국일 수 있다. 세상의 이치가 늘 예측한 대로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대한민국은 협력과 상생의 바다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역량과 능력을 가졌다고 본다.

위기는 늘 기회로 반전됐고, 지금의 동북아 위기도 우리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북극항로를 포함해 새로운 의제가 계속 생성되고 있는 동북아 바다에서 우리는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해수부의 부울경 이전은 그래서 더 시의적절했다.

2025년이 저물고 있다. 부산 경제 발전의 새로운 동력이 될 해수부와 함께 맞이하는 2026년이 이제 보름도 남지 않았다. 새해부터 시작되는 해수부의 부산 시대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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