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일본과 중국의 세력 전이와 정당성 경쟁
신정화 동서대 캠퍼스아시아학과 교수
일본 총리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계기
중일 갈등, 군사적 긴장 확산 분위기
일, 센카쿠 충돌 이후 대중 억지 전략
중, 군국주의 연장으로 규정하며 반발
미 관망 속 양국 대립 당분간 지속 예상
한국, 조정자 국가로 외교 역량 강화를
약 한 달 전부터 이어진 일본과 중국의 대립은 이제 군사적 충돌 가능성으로까지 비화하고 있다. 직접적 계기는 지난달 7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국회에서 행한 “대만 유사 상황은 일본의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하며,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포함해 개입할 수 있다”는 발언에서 비롯됐다. 그는 자신의 보수 우익적 신념에 따라 역대 내각이 유지해 온 ‘전략적 모호성’을 걷어낸 것이다. 일본의 중도 보수 진영은 중국과의 관계 악화가 경제에 미칠 파장을 우려해 발언 변경을 요구했지만, 다카이치 총리는 75%에 달하는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이를 거부하며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재확인하려 했다. 그리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대만과 가장 가까운 요나구니섬의 육상자위대 기지를 시찰했고, 필리핀·호주 등 중국의 해양 진출에 위협을 느끼는 국가들과의 군사 협력을 신속하게 강화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즉각 발언 철회를 요구했으며, 이어 일본 여행·유학 자제 권고, 일본 영화 상영 중단, 2년 만에 재개된 일본산 수산물 수입의 재금지 등 일련의 보복 조치를 잇달아 발표했다. 12월 6일에는 중국군 전투기가 오키나와 인근 공해 상공에서 일본 F-15기를 향해 두 차례 사격통제레이더를 조사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중일 양국의 갈등이 외교·문화·경제 영역을 넘어 안보 영역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 주목할 점은 이번 대립이 단순한 외교적 충돌을 넘어, 멀게는 19세기 말, 가깝게는 2010년 센카쿠 사건 이후 지속돼 온 양국 간 세력 경쟁의 향방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중국을 본격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게 된 전환점은 2010년 센카쿠 충돌 사건이었다. 이 사건 이후 일본 정부는 센카쿠 섬들을 국유화했고, 중국은 이에 맞서 희토류 수출 규제를 단행했다. 여기에 중일 국내총생산(GDP) 순위의 역전이 겹치면서 청일전쟁 이후 약 100년간 유지되어 온 ‘일본 우위’ 구조가 무너졌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12년 출범한 아베 신조 내각은 중국을 사실상 ‘주적’으로 상정하며 대중 억지 전략을 전면화했다. 아베 내각은 미일 동맹을 심화하는 동시에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FOIP)’ 구상 등 해양 민주국가 네트워크를 구축해 중국의 해양 진출을 견제하고자 했다. 특히 2015년 제정된 ‘평화안보법제’는 일본의 안보 상황을 중요 영향 사태, 존립 위기 사태(이번 논란의 핵심), 무력 공격 사태의 세 단계로 구분하고, 단계별로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후방지원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 나아가 자국 방위의 전면 대응까지 확대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정부는 자국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민주국가들이 구축한 규범과 법치에 기반한 국제질서의 ‘수호자’로, 중국을 ‘힘에 의한 현상 변경자’로 규정하는 프레임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한편, 중국은 1949년 국가 수립 이후 ‘하나의 중국’ 원칙 아래 대만 문제를 국가의 핵심 이익으로 규정해 왔다. 시진핑 주석은 특히 청일전쟁을 ‘근대 중국 치욕의 출발점’으로 규정하며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는 한때 세계 GDP의 3분의 1을 차지하던 청나라가 일본에 패배함으로써 대만의 일본 식민지화, 오키나와의 일본 병합, 센카쿠 열도의 일본 편입 등이 이루어졌다고 인식한다. 따라서 시진핑에게 ‘대만 통일’은 단순한 영토 회복을 넘어 굴욕의 근대사에 대한 복수이자 역사 회복의 과업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중국은 대만 유사시 일본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행위를 곧 과거 군국주의 침략의 연장으로 바라보고, 일본의 자위권 행사 가능성 자체를 사전에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자국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 아베 내각이 사용했던 프레임을 역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1월 24일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중국과 미국은 80년 전 파시즘과 일본 군국주의에 맞서 함께 싸웠다”고 언급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성과를 수호하기 위한 미중 연대를 강조했다. 즉 중국은 자신을 근대 일본이 힘으로 변경해 놓았던 질서를 바로잡는 정의로운 ‘질서 수호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가치와 규범을 중시하는 일본과 역사와 민족주의 서사를 강화하는 중국 간 대립은 미국의 관망 기조 속에서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국제 정세가 강대국의 전략적 선택에 의해 죄우된다는 점은 변함없으며, 이미 중국의 GDP는 일본의 약 4~5배에 달한다. 이러한 복합적 혼란 속에서 한국은 이재명 대통령이 외신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부치는” 조정자이자 책임있는 중견국으로서 고도화된 위기관리 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