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무늬 김장 조끼 [키워드로 트렌드 읽기]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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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만 되면 어머니들의 유니폼처럼 등장하던 꽃무늬 조끼가 요즘 가장 힙한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화려하고 알록달록한 꽃무늬로 시선을 사로잡고, 활동성도 좋으면서 보온성까지 갖춘 누비 조끼, 이른바 ‘김장 조끼’다. 패션 플랫폼이나 온라인 쇼핑몰을 뒤져보면 김장 조끼 판매량이 최근 급증했다는 걸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했고, 특히 2030세대의 주문량이 많이 늘어났다. 비슷한 디자인을 차용한 문구류, 생활용품을 모은 기획전이 마련되는가 하면 일부 유아용·반려견용 김장 조끼는 품절 사태까지 빚었다. 친구끼리 드레스 코드(Dress Code)로 맞춰 입은 뒤 인증샷을 찍어 SNS에 올리는 놀이 문화도 퍼졌다. 특히 블랙핑크 제니와 에스파 카리나 등 K팝 스타들의 김장 조끼 입은 모습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해외 팬들도 주목하고 있다.

김장 조끼는 과거 촌티 패션이 유행했을 때만 해도 몸빼(일바지), 깔깔이(방한 내피)와 함께 의도적으로 촌스러움을 연출하기 위한 장난기 섞인 스타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의 김장 조끼 열풍은 좀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이미 김장에 옷 스타일을 뜻하는 외래어 ‘룩(look)’이 결합한 ‘김장룩’과 촌(村)에 휴가를 뜻하는 프랑스어 ‘바캉스(Vacance)’가 더해진 ‘촌캉스’라는 신조어도 일상에 녹아든 지 오래다. 그 바탕 위에 촌스럽지만 귀여운 할머니·할아버지 세대의 감성을 재미있게 받아들였다는 것. 패션업계에서는 이를 ‘그래니시크(Granny-chic)’ 또는 ‘그랜마 코어(Grandma Core)’ 등으로 부른다. 지드래곤이 착용해 화제가 된 러시아식 스카프인 바부슈카를 비롯해 군밤장수 모자로 불리는 방한모도 비슷한 예로 꼽힌다.

어쩌다 젊은 층이 어르신들의 옷장을 뒤지게 된 걸까. 일각에서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심리와 연결 짓기도 한다. 무한 경쟁 대신 안정감을 원하는 마음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품 같은 옷으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앞서 제과업계나 카페를 중심으로 유행했던 전통 차(茶)나 옛날식 다방 같은 ‘할매니얼(할머니+밀레니얼)’ 트렌드와도 맞닿는 구석이 있다. 한편으로는 김장 조끼의 부활이 과잉 생산과 빠른 소비를 부추기는 패스트 패션(Fast fashion)의 흐름과 상반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본디 누비 조끼가 시골에서 일을 할 때 입던 옷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만 원 이하부터 시작하는 저렴한 가격에 몇 년씩 입을 수 있는 내구성은 기본이다. 여기에 추운 날씨에 체온을 지켜주는 보온성과 더불어 부모님 세대와의 감성적 연결까지 제공하니 가성비와 가심비를 동시에 잡은 셈이다.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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