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함께 가야 오래 간다
이수태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
부산사랑의열매 회장을 맡은 후 고민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과연 잘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 그 다음엔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과 나눔을 전파하는 사랑의열매 회장으로서 어떻게 두 역할의 균형을 맞출 수 있을 것인가였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기에 매일같이 마음을 졸였다. 혹여나 사랑의열매가 상징하는 ‘사랑의온도’가 식을까, 그 온도가 낮아져 시민 여러분과 도움이 절실한 이웃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리는 건 아닐까, 늘 불안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기우였다. 수많은 기부자의 따뜻한 손길과 나눔의 용기로, 지난해 사랑의온도는 무려 130.5도를 기록했다. 역대 가장 뜨겁고, 가장 벅찼던 기록이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나눔은 결코 혼자의 힘으로 이룰 수 없는 가치임을, 부산 시민 여러분은 실천으로 증명해주셨다.
지난 겨울과 봄, 우리 사회는 크고 작은 위기 속에 놓여 있었다. 특히 지난 3월,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 피해를 기록하며 수많은 생명과 터전을 앗아갔다. 사랑의열매는 긴급자금을 투입하고, 특별모금 캠페인을 전개하며 이웃의 아픔에 가장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 결과,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공감 속에 13억 5300여 만 원의 성금이 모였다. 이 소중한 성금은 기부금협의회를 통해 피해 지역 주민들의 회복과 재건을 위해 전액 사용되고 있다. 한 분 한 분의 기부는 단순한 돈이 아니라,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였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부산 시민들에게 감사드린다.
그 과정에서 기업인으로서의 역할과 사랑의열매 회장으로서의 역할의 균형에 대해서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발전과 기술 진보를 통해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지만, 그 이면에는 소외된 이웃과 단절된 공동체, 그리고 깊어지는 사회적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근간이 된 ‘국부론’에서 아담 스미스는 개인의 이기심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사회의 이익으로 실현이 된다고 하였다. 이에 많은 기업인들은 기업의 이윤추구를 최고의 목표로 삼았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 빈부격차 등의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 CSR, ESG경영 등이 강조되기도 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성과가 일부에게만 집중될 때, 그 체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이런 시대적 흐름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창조적 자본주의’(Creative Capitalism)다. 이는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를 넘어, 사회적 책임을 기업 활동의 핵심 축으로 삼자는 제안이다. 즉, 시장의 효율성과 기업의 창의력을 활용하여, 그 혜택이 사회적 약자와 취약한 공동체에도 골고루 돌아가도록 하자는 철학이다. 기업이 이윤추구와 더불어 사회적 책임을 중요한 목표로 삼고 기업의 핵심 부서에서 실천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정신은 경제를 바라보는 시선을 근본적으로 바꾼다. 성장의 속도를 자랑하기보다는, 성장의 방향과 함께 가는 이들을 돌아보게 한다.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오래 간다’는 말이 있다. 이 아프리카 속담은 창조적 자본주의가 지향하는 방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빠르게 이윤을 창출하는 전략보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나누는 구조가 오래가는 경제의 해법이라는 뜻이다.
기업과 개인, 그리고 지역사회가 이 정신을 바탕으로 손을 맞잡는다면, 부산은 단순한 경제 도시를 넘어 사람 중심의 지속가능한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창조적 자본주의는 이윤과 나눔, 효율과 공감이 공존하는 미래형 모델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야 할 때이다. ‘얼마나 더 벌 수 있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성장할 것인가’를 묻는 사회. 그곳에서 비로소 진정한 지속 가능성과 공동 번영이 시작된다. 우리는 알고 있다. 혼자 빨리 가는 길은 외롭고, 함께 오래 가는 길은 의미 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창조적 자본주의의 실천자로서, 함께 오래 가는 길에 나서야 할 때이다. 아담 스미스도 기업의 이윤 추구가 아니라 그 결과로 발생하는 사회이익으로 모두가 잘 사는 사회를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인으로서 그리고 사랑의열매 회장으로서 지향하는 바가 동일하다. 우리 사회가 오래 함께 갈 수 있는 이 길에 부산시민들이 함께 하길 바란다.
부산사랑의열매는 기부금액에 따라 온도가 올라가는 사랑의온도탑을 세우고 ‘행복을 더하는 기부, 기부로 바꾸는 내일’이라는 슬로건으로 이달 1일부터 내해 1월 말까지 희망2026나눔캠페인을 시작한다. 함께 오래 나아가기 위해 모두가 함께 한다면, 사랑의온도는 100도를 넘어 펄펄 끓어 넘칠 것이다.
희망2026나눔캠페인을 통해 모여진 성금은 양극화 심화에 따른 불평등 완화를 위한 건강, 교육, 주거, 안전 등 기본 생활 지원과 더불어 초고령 사회, 1인 가구 증가 등 지역사회 내 높아진 돌봄수요에 맞는 맞춤형 통합돌봄 서비스 제공, 사각지대 위기가구 및 각종 사회이슈에 긴급 대응, 기후위기 취약계층 지원 강화 등 다양한 사회 이슈와 지역현안을 해결하는데 사용된다. 사랑의열매는 앞으로도 더 많은 책임과 신뢰를 바탕으로,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 쉼 없이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