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적십자 회비에 담긴 '부산의 연대'
구정회 대한적십자사 부산지사 회장
2025년 세계 적십자의 날 슬로건은 ‘On the Side of Humanity’(인류의 편에서)이다. 이 슬로건은 인종, 국적, 종교, 정치적 배경을 넘어 모든 인간의 존엄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겠다는 약속을 담고 있다. 고통받는 사람을 발견하면 가장 먼저 다가가고, 위기 상황이 길어질수록 더 오래 곁을 지키겠다는 인류 공동의 약속이기도 하다. 이러한 메시지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곁에 끝까지 남겠다는 적십자의 변하지 않는 사명을 다시 일깨운다. 적십자 운동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으며, 부산지사 역시 이러한 가치 아래 지난 76년 동안 지역사회와 함께해 왔다.
적십자 운동은 1863년 전쟁터에서 부상자를 차별 없이 보호하려는 열망에서 시작됐고, 대한적십자사는 1905년 고종 황제의 칙령에 따라 ‘널리 구제하고 고루 사랑하라’는 정신을 바탕으로 창립돼 올해로 120년을 맞았다. 부산에서는 1949년 부산지사가 발족된 이래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화재구호 등 인도주의 활동을 이어오다 6·25전쟁 당시 수영강변에서 피 묻은 군복을 손수 빨며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시작하였고, 1953년 황폐한 국토를 되살리기 위해 서구 천마산에서 나무를 심으며 시작된 대한민국 청소년적십자 활동, 베트남 난민 수용 등 재난과 혼란의 시대마다 생명을 살리고 위기를 극복하며 희망을 전하는 데 힘을 보태 왔다.
적십자 회비는 이렇듯 오래된 역사 속에서 쌓아온 책임감으로, 가장 필요한 순간에 사용된다. 올해 역시 부산지사는 다양한 현장에서 적십자의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무안국제공항 제주 항공기 추락 사고와 경북 산불 피해 발생 당시 긴급 모금을 전개했으며, 대규모 이재민이 발생한 경북 영덕에 긴급구호박스, 쉘터, 급식차량을 즉시 전달했다. 동시에 재난 심리 지원을 실시해 피해 주민의 빠른 일상 복귀를 도왔다. 평시에는 부산 내 1930여 결연가구에 밑반찬 지원, 맞춤형 물품 지원, 정서 돌봄을 이어 왔고, 범죄 피해자 지원과 김장 나눔, 캠코와 함께한 소외계층 가족 힐링 여행(희망 리플레이 제주 가족여행) 등 다양한 복지 활동도 펼쳤다.
재난 대응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됐다. 전국 25개 기관이 함께하는 대규모 재난대응 역량 강화 훈련인 ‘레디코리아’에 참여해 실전형 훈련을 수행하고, 11월에는 200여 명의 직원과 봉사원이 참여한 전국 재난구호 종합훈련을 개최해 이재민 구호 절차와 현장 대응 능력을 높였고, 전국학생심폐소생술 경연대회를 주관해 시민의 생명 구조 역량 향상에도 기여했다. 또한 결혼이주여성 20여 명과 적십자 봉사원의 결연을 통해 한국의 전통 문화를 체험하고 부산 특화 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이제 부산지사는 2026년도 적십자 회비 모금 62억 원을 목표로 12월부터 본격적인 희망나눔 성금 모금 운동에 들어간다.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일정 금액을 매월 후원하며 지속적으로 취약계층을 돕는 정기후원 프로그램(희망 나눔 사업장(매월 3만 원 이상), 씀씀이가 바른기업(매월 20만 원 이상), ESG실천기업(매월 50만 원 이상) 등)이 있다. 또한 연말 지로 용지와 함께 개인이나 사업장이 의미 있는 날에 자유롭게 참여하는 특별성금 형태의 일시적 후원이 가능하다. 여기에 더해, 인도주의 가치를 함께 확산하고자 하는 이들이 1억 원 이상 후원을 약정하는 ‘레드크로스 아너스클럽’도 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방식으로 상황에 따라 나눔에 동참할 수 있다.
‘On the Side of Humanity’라는 슬로건처럼 부산적십자는 앞으로도 사람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일에 흔들림 없이 나아가고자 한다. 부산 시민의 참여가 늘어날수록 우리 지역의 안전망은 더 단단해지고, 위기에 놓인 이웃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도 더 많이 생길 것이다. 희망을 잇는 이 나눔에 함께 해주시길, 뜻깊은 참여와 따뜻한 성원을 보내주시기를 정중히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