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하는 미국, 글로벌 질서가 재편된다
저널리스트 페페 에스코바
신간 '다극세계가 온다'
올 한 해 세계 정세를 되돌아보면 그 핵심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밀어붙인 ‘무역 전쟁’이 있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의 동맹국들은 대부분 미국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 5개국을 비롯한 적지 않은 나라들이 여기에 순응하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려는 반작용에 나섰다.
우리는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실 미국은 21세기를 맞아 금융위기, 군사적 실패, 쌓이는 재정 적자, 제조역량 상실, 총기 및 마약, 양극화 등의 사회 혼란으로 쇠퇴하고 있다. 반면 브릭스 5개국은 지난 10여 년간 빠른 속도로 착실하게, 그리고 거의 모든 분야에서 스스로의 힘을 키워오면서 ‘다극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이 책은 다극 세계 진영의 대표적 지정학 분석가이자 브라질 출신의 저널리스트 페페 에스코바가 2021~2024년 쓴 글들을 선별하여 정리한 것이다. 그는 다극 세계의 전진을 이른바 ‘내재적 관점’, 다극화 진영 스스로가 주장하는 관점과 논리를 바탕으로 살피고 있다.
저자는 부시-오바마-트럼프-바이든을 아우르는 21세기 미국의 국가적 과제, 즉 ‘테러와의 전쟁’이 끝내 실패로 끝난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야기로 시작해 미국과 나토가 러시아에게 군사적으로 밀리고 있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 취재기로 마무리한다.
미국이 개입하고 있는 이 두 개의 전쟁이 지금까지의 ‘규칙 기반 세계질서’가 끝나고, 다극 세계의 실질적 우위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주장한다.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압도적인 군사력, 경제력으로 ‘거대한 체스판’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세계를 호령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는 것이다.
또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80년 동안 지속된 ‘달러 패권’의 위기에 대한 심각한 논의들도 다룬다. ‘달러 없는 세계경제’를 추진하는 주체들의 전략과 논리, 새로운 관점과 정보로 탈달러 거버넌스 구축의 경로를 예상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미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세상을 ‘기본값’으로 하는 우리의 관성적인 인식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세계 역사의 중심축이 차곡차곡 만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국제질서의 대변동 속에서 핵심적 흐름과 대세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고 싶다면 이 책이 강조하는 다소 대담하고 급진적인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라고 한다. 다만 이런 입장이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가질 의미는 각자에게 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미래 세계 정세에 대한 이 책의 예측을 안보·경제적으로 분명한 지침으로 삼아야 할지 여부는 독자 스스로가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페페 에스코바 지음·유강은 옮김/돌베개/316쪽/2만 1000원.
박석호 기자 psh2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