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붕괴사고 25m 높이서 추락하고도 생존했다
울산 동서발전 사상자의 생사 갈린 이유
근로자 9명 중 타워 내부 작업자는 8명
이 중 60대 이 씨만 붕괴 속에서도 생존
다른 이들은 모두 잔해 휩쓸려 목숨 잃어
이 씨의 생존 비결은 안전 띠와 작업 위치
전문가들 “두 가지 요소가 생존에 결정적”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 현장. 부산일보DB
9명의 사상자를 낸 울산 동서발전 화력발전소 붕괴 사고 당시 25m 높이에서 추락한 근로자 이 모(64) 씨가 목숨을 구한 배경은 ‘그네식 안전벨트’와 ‘외벽 작업’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24일 <부산일보>가 입수한 사고 당시 영상과 구조 현황 등을 종합하면, 붕괴 직전 이 씨는 보일러 타워 25m 높이 난간의 바깥쪽에서 작업 중이었다. 산소절단기로 불꽃을 튀기며 취약화 작업을 하고 있었다.
타워 외부 지상에서 고소작업차에 탑승해 있던 생존자 양 모(44) 씨를 제외하면, 이 씨는 붕괴된 구조물과 함께 직접 추락하고도 살아남은 유일한 근로자다.
이들의 생사는 ‘작업 위치’와 ‘벨트 결속 여부’가 맞물리며 한순간에 갈렸다. 당시 이 씨를 포함해 사망한 작업자들까지 모두 규정대로 그네식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동일 조건 하에서 생존 확률을 가른 또 다른 변수는 작업 위치였다.
구조 당국 수색 결과 숨진 근로자 7명은 모두 철골이 겹겹이 쌓인 잔해 더미 깊숙한 곳에서 발견됐다. 5명은 6호기 인근, 2명은 4호기 쪽 잔해 속에서 심정지 상태로 수습됐다.
건물 안쪽에서 작업하던 이들은 붕괴 시 발생하는 강력한 쏠림 현상 탓에 안전벨트를 맸음에도 불구하고 잔해의 중심부로 빨려 들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이 씨는 사고 20여 분 뒤인 오후 2시 23분 매몰지 내부가 아닌 가장자리 지상에서 발견됐다.
굉음과 함께 건물이 무너져 내릴 때 외벽 쪽 난간에 연결한 안전줄이 이 씨를 붕괴 중심부로 휩쓸리지 않도록 붙들어 매는 지지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중상을 입은 상태였으나 이 씨는 잔해 틈에서 스스로 몸을 빼내 구조될 수 있었다.
창원대학교 건축학부 이강주 교수는 “붕괴 당시 안전벨트가 없었다면 이 씨는 충격으로 밖으로 튕겨 나가거나 잔해 안쪽 깊숙이 매몰됐을 가능성이 크다”며 “구조물 가장자리에서 작업 중이었고, 안전벨트로 몸을 결속하고 있었던 것이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이 씨의 생존을 기적이라 부른다. 그러면서도 앞으로 이 같은 참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울산의 한 플랜트노조 관계자는 “안전벨트가 최후의 순간 한 명의 목숨을 구한 것은 천만다행이지만 개별 안전장비에 의존해 생사를 가르는 상황 자체가 비극”이라며 “노후 설비 철거 과정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 진단과 안전 대책이 시급하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6일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에서는 가로 25m, 세로 15.5m, 높이 63m 규모의 보일러 타워 5호기가 철거 작업 중 붕괴했다. 이 사고로 현장 작업자 9명 중 7명이 숨졌고, 이 씨 등 2명은 중경상을 입고 가까스로 구조돼 치료받고 있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 강대한 기자 kd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