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에 맡긴 '깜깜이 분양률'에 애먼 소비자만 불안 [커버스토리]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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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미분양 아파트 통계, 신뢰성 논란

건설업체 자발적 신고에 의존
상당수 공개 거부나 수치 축소
부실 정보 탓 ‘폭탄 돌리기’ 피해
정부 정책 수립에 차질 가능성
신고 의무화 법안 발의됐으나
낙인 효과에 건설사·주민 반발
“브랜드 뺀 수치만 공개” 주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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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건설사 보유분’ ‘마감 임박’ ‘당신만을 위한 특별 분양 혜택’….

번화가를 지나갈 때면 흔히 마주칠 수 있는 분양 홍보 문구다. 대개는 그냥 지나치지만, ‘저 아파트가 여전히 남아 있나’ 하며 고개를 돌릴 때도 있다. 분양 홍보관에 들어서면 대행사 직원이 ‘정말 마지막 남은 기회다. 더 늦으면 안 된다’고 밀어붙이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미분양이 실제로 얼마나 남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분양시장에서 ‘깜깜이’ 통계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신고용 미분양 숫자는 따로 있어”

정부가 ‘10·15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때 최신 9월 통계를 반영하지 않았다는 논란이 이어지면서 미분양 아파트 통계에 대한 신뢰성 문제도 함께 도마에 올랐다. 사업장을 전수 조사해보면 실제 미분양 아파트는 통계 수치의 2배는 족히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정부의 미분양 통계가 전적으로 건설사의 자발적 신고에 의존하고 있는 탓이다.

17일 부산시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부산의 미분양 주택은 7316세대로 전월 대비 170세대 증가했다. 이는 미분양 주택이 9200세대에 달했던 2009년 이후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한 달 만에 부산진구에서 645세대의 미분양 아파트가 쏟아졌고, 수영구에서도 127세대가 추가로 미분양됐다. 한동안 신규 분양이 없던 부산에서 7~8월 분양이 잇따르면서 발생한 결과라고는 하지만 수치는 심상치 않다.

그러나 실수요자들은 어떤 신축 단지에서 얼마나 미분양이 발생했는지 알기 어렵다. 부산시는 매달 홈페이지를 통해 미분양 통계를 업데이트하고 있지만, 다수의 아파트 현장은 ‘사업주체 비공개 요청에 따라 비공개 조치함’으로 표시돼 공란으로 처리된다. 미분양 현황이 공개된 아파트는 미분양 세대를 대부분 해소했거나, 중소 건설사가 시공하는 소규모 아파트들 정도다.

미분양 주택 집계는 매달 초 지자체가 건설사들에게 공문이나 유선 전화를 통해 집계한다. 일부러 미분양 주택을 숨기거나 수치를 왜곡해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는 시스템이다. 사업자 양심에 맡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의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지자체에 보고하는 분양 규모와 온·오프라인 홍보용으로 쓰는 분양 규모, 실제 분양 숫자 등은 제각기 다르다고 봐야 한다”며 “특히 지금처럼 부동산 시장이 안 좋을 때는 분양률이 최소 40% 수준까지 올라올 때까지는 미분양 신고를 최대한 지연시킨다”고 전했다.

■부실 통계는 부실 정책 낳아

결국 깜깜이 미분양 통계의 피해는 실수요자들에게 전가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못해도 수억 원을 호가하는 주택을 구매하면서도 분양시장에 만연한 정보의 비대칭성 탓에 ‘폭탄 돌리기’의 마지막 희생양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미분양 통계는 정부가 주택 정책을 수립할 때 활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료다. 기초적인 데이터베이스가 흔들린다면 제대로 된 주택 공급 정책을 세우기 어렵다. 투자자나 실수요자들도 주택 매매 시점을 가늠하기가 힘들어진다.

이 같은 논란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최근에는 미분양 물량 신고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연희 의원은 사업주체에게 미분양 현황 신고를 의무화하도록 해 축소 신고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지자체가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도록 하는 주택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신고 내용이 사실과 다른 경우 사업주체에게 10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고 해당 사업주체는 미분양 주택에 대한 각종 세액 감면 혜택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았다.

그러나 건설업계 반발이 만만치 않다. 악성 미분양이 무더기로 나오게 된다면 이는 곧 ‘실패한 사업’이라는 낙인 효과를 찍게 돼 향후 분양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매물 가치가 떨어진다면 수분양자들은 물론 인근 주민들의 반대도 극심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부산의 한 건설사 대표는 “미분양 주택 수는 시기나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며 영업비밀에 속한다”며 “더군다나 지금처럼 부동산 시장이 침체돼 있을 때는 지역 건설사들이 더욱 큰 피해를 받게 된다. 지역 경제가 침체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실제 부동산 시장 상승기에는 미분양 통계 등 허술한 통계 정책의 부작용이 덜할 수 있다. 하지만 하강 국면에서는 기초적인 통계의 오류가 정책 실기로 이어져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특정 건설사나 아파트 브랜드를 공개하지 않고 주택 숫자만 정확하게 의무 신고하는 방안으로 낙인 효과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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