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글로벌 창업 도시를 향한 성공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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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철 부경대 토목공학과 교수 / 전 부산과학기술고등교육진흥원장

혁신 스타트업, 21세기 경제 지도 재편
벤처 열기, 미국·중국 경기 상승 이끌어
수도권 쏠림 한국, 서울 외 영향력 없어

창업 경쟁력, 지역의 선택 아닌 필수
부산기술창투원 설립 펀드 조성 시작
인재·투자·혁신, 도시 운영 체계 돼야

인공지능(AI) 시대, 기술이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는 속도는 전례 없는 혁신을 이끌고 있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시대의 문제를 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스타트업이 있다.

21세기 경제 지도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탄생하는 ‘창업 도시’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미국, 중국 등이 활발한 창업 열기를 바탕으로 우월한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듯이 창업은 이제 도시와 지역 경제를 살리고 새로운 인구를 유입시키는 생존 전략이 되었다.

한국의 창업 생태계는 1997년 벤처기업육성특별법 제정 이후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질적 성숙은 아직 부족하다. 특히 심화는 수도권 쏠림 현상과 지역 창업 생태계의 완결성 부족은 고질적인 문제이다. 실제로 글로벌 창업 정보 분석 플랫폼 ‘스타트업블링크’의 2025년 순위에서 한국은 서울(20위)만이 100위권에 들었을 뿐, 대전은 366위, 부산은 393위, 울산 546위에 머물렀다. 서울 외에는 내세울 만한 창업 도시가 사실상 전무한 현실을 감안할 때, 부산이 독자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창업 도시로 거듭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 전략이다.

성공적인 창업 도시는 투자 접근성, 창업보육, 실증 공간 등이 포함된 생태계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시너지를 창출하는 곳이다. 이 중에서도 투자, 인재, 공간은 도시의 창업 생태계를 지탱하는 핵심 삼위일체이다. 이 세 가지 핵심 요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지역 창업이 활성화되더라도 성장 단계에서 충분한 투자 유치나 인수합병(M&A)이 어려워 결국 수도권으로 유출되고 만다. 이는 지역 창업 생태계가 초기 단계에 고착화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부산시는 올해 2월 부산기술창업투자원을 설립하고 2026년까지 총 1조 5000억 원 규모의 창업 펀드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통해 자본 환경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실제 최근 펀드 규모 급증과 더불어 국내 최대 액셀러레이터(AC) 협회가 부산에 첫 지역본부를 설치하는 등 긍정적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러나 전국 벤처기업의 약 40%가 비수도권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유치하는 벤처 투자 비중은 여전히 20% 수준에 그치는 냉정한 현실은 여전하다.

이러한 투자 절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 정책과 제도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비수도권에 투자하는 AC 및 벤처캐피털(VC)에 대한 세제 혜택을 강화하고, 수도권에서 비수도권으로 이전하는 기업에는 법인세나 재산세 감면 등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나아가 싱가포르처럼 복잡한 외환거래 절차를 간소화하고 법인세 면제 등 파격적인 혜택을 부여하는 가변자본기업(VCC) 제도를 벤치마킹하여, 해외 벤처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필요가 있다.

창업 생태계의 핵심은 결국 인재이다. 국내외 인재들이 부산으로 유입되어 정착할 수 있는 글로벌 정주 여건 개선 또한 시급한 과제이다. 현재 외국인 창업자(기술창업비자 소지자) 87.3%가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부산시는 이미 외국인 유학생의 비자 재정 요건을 완화하고 취업 활동을 허용하는 광역형 비자 시범 사업을 추진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지역 기업 및 공공기관과의 오픈이노베이션 기회를 확대하여 외국인 창업자들이 사업 성과를 낼 수 있는 실질적인 지원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미국 텍사스 오스틴이 기업 친화적인 세금 정책과 매력적인 생활 환경으로 젊은 인재들을 끌어들인 성공 사례에서 찾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이다.

창업 생태계는 단순히 정책과 제도만으로 견고해지지 않는다. 혁신적 기업가 정신의 문화적 확산은 어떤 정책이나 규제보다 훨씬 지속적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 선배 창업가가 투자자·멘토로 돌아오는 선순환 구조, 대학과 기관의 활발한 교류가 창업 도시의 리듬을 만든다. 창업은 제도에서 태어나지만, 결국 문화에서 성장하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시장 앞에서 한발 앞서 길을 열고, 시장이 스스로 달리기 시작하면 한 발 물러나 민간의 속도를 따라가는 촉매제여야 한다. 대학은 논문과 특허에만 머물지 말고, 연구실의 기술을 사업의 언어로 번역해 학생을 창업과 산업의 주역으로 세워야 하며, 민간은 지역을 ‘선의의 후원’이 아니라 ‘수익과 기회’의 장으로 바라봐야 한다.

창업 도시는 화려한 구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자본이 들어올 명확한 장치, 인재가 이주할 충분한 이유, 그리고 혁신이 일상적으로 가능한 환경을 묶어 도시의 운영 체계로 정립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부산이 주도하는 글로벌 혁신은 행정의 선언이 아니라, 내일의 스타트업이 이 도시를 떠나지 않아도 되는 실질적 환경에서 시작된다. 부산이 진정한 글로벌 창업 도시로 도약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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