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상생 없이 성과 없다
이호진 경제부 선임기자
북극항로, 해수부 이전에 기대 만발
LNG 국적선 적취율 0% 우려 제기
해운·조선·화주 상생해야 성과 나와
해수부·부산시도 보폭 맞추기 절실
희망은 도둑같이 찾아왔다. 올해 우리나라 해양산업계는 한껏 기대에 부풀어 지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타당성 검토와 저울질에 들어갔던 북극항로를 새 정부가 국정과제로 삼으면서부터다.
부산 해양수산계도 마찬가지다. 올 연말이면 ‘해양수산부 부산 시대’가 열린다. 2000년 12월 제2롯데월드 착공식에서 고 안상영 부산시장이 “부산을 해양수도로 키우자”고 선포하고도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한 해양수도의 꿈이 한 걸음 현실로 다가선 것이다.
하지만 기회는 기회일 뿐이다. 성과는 각 행위 주체들의 노력으로 만들어 내야 한다. 다시는 오지 않을 이 기회를 탈바꿈과 성장으로 연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상생 협력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누군가가 한 최선의 선택이 때로는 누군가에겐 파멸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우리나라 공기업이 수송선 선택권을 해외 수출업자에게 맡기는, 즉 DES방식 때문에 국내 선사 일감이 급감했다는 사실이 그 예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한국가스공사의 국적선 적취율이 12년 뒤 0%로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적선으로 국내 화주의 화물을 운송하는 비율을 국적선 적취율이라 부르는데, 액화천연가스(LNG)를 수입할 때 해운 선사 선택권을 수입업자가 행사(FOB방식)할 수 있음에도 DES방식으로 해외 수출업자에게 넘김으로써 국적선 적취율이 2020년 52.8%에서 올해 33%로 떨어졌고, 2037년에는 0%로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가스공사는 장기 계약 특성상 DES방식의 수입 단가가 FOB방식보다 낮기 때문에 수입원가를 낮추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공기업인 가스공사의 경영평가에도 LNG도입 원가가 반영되었을 것이다.
가스를 저렴하게 사올 수 있으면 해외 선사에 의존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에너지에 생존권이 달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운송망에 문제가 생겼을 때 대안이 없는 위험을 떠안아야 한다. 해운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단순한 원가 절감 차원 조치만은 아니었다.
가스공사가 개발한 한국형 LNG화물창을 도입해 운항하던 SK해운이 화물창에 문제가 생겨 소송을 제기했고, 2023년 10월 가스공사가 패소했다. 가스공사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지만, 배를 지은 삼성중공업이 런던 중재재판부 판결에 따라 SK해운에 3700억 원을 물어주고 가스공사에 구상권 청구소송을 진행해 이 소송도 진행 중이다. 또 가스공사가 옛 현대상선과, 이 회사 LNG부문을 2014년 인수한 현대LNG해운에 운송대금을 이중으로 지급한 사실을 확인하고, 정산금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했지만 지난해 5월 최종 패소하기도 했다.
가스공사 잘못이 있더라도 국내 해운사를 믿고 의지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국적선 적취율이 낮아지면서 글로벌 LNG시장 영업에 주력하는 국내 선사들이 원가를 낮추려고 외국인 선원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내국인 선원 일자리 감소가 장기적으로 국내 선사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화주와 선사 사이의 문제만이 아니다. 2010년대에는 조선사 실적에만 매몰돼 정책 자금을 글로벌 선사에 대거 빌려줘 최신형 선박으로 무장한 글로벌 선사들에게 한진해운이 밀리고 결국 파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선과 해운이라는 연관 산업 사이의 역학 관계에 대한 몰이해가 원인이었다.
이런 문제를 조정하고 지휘하는 컨트롤타워라 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어떤가.
해수부가 부산에 오면서 이미 내년 시장 선거 전초전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 출마가 기정사실화 되고 있는 전재수 해수부 장관과 3선을 노리는 박형준 시장 사이의 경쟁과 견제가 물밑에서 치열하다. 해양수도 실현이 곧 글로벌 해양 허브 도시임을 대부분의 시민들은 아는데, 각자의 브랜드를 놓치지 않기 위한 논쟁이 자칫 지역 발전에 모아야 할 역량을 흐트리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동남권투자공사든 산업은행이든 상황에 맞게 최대한 지역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끌고 가면 될 일이다. 더 힘을 모을 일은 해수부가 조선과 해운을 통합적 관점으로 총괄하도록 제도와 법령을 바꾸는 일, 부산에 오는 해양수산 관련 기관과 기업들이 제대로 정착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부산시가 먼저 해양 기능 강화에 선도적으로 나서는 일이다. 해수부나 부산시나 1%도 안 되는 해양 관련 예산과 조직으로 어떻게 해양수도와 해양강국을 말할 수 있겠나. 큰 목표 아래 상생·협력할 때다. 국토부·산업부, 경기도·서울시가 보기에 ‘꼬시래기 제 살 뜯는 모습’이 안 되도록.
이호진 기자 jin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