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누리마루를 넘어 나래마루로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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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용 사회부 기자

지난달 말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뜨거웠다. 세계 21개국 정상이 모이는 APEC 정상회의가 20년 만에 경주에서 열렸다. ‘세기의 담판’이라 불린 미국과 중국의 정상회담도 열렸다. 최첨단 AI 생태계를 이끄는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우리나라에서 ‘치맥’을 즐겼다.

부산도 예상과는 달리 달아올랐다. 경주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주요 인사들의 김해공항 이용은 예정돼 있었다. 주요 인사들이 부산을 거쳐 경주로 향하게 되면 부산은 큰 사건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부산 중에서도 ‘이 곳’이 가장 조명 받았다. 부산 사람들마저도 잘 몰랐던 장소. ‘누리마루 아니고?’라고 반문하게 했던 장소. 김해공항 공군기지 나래마루로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세계 패권을 다투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국가 주석이 나래마루에 마주 앉았다. 의전이 갖춰지고 화려한 장소는 아니었지만 양국의 사정이 맞아 떨어진 최적의 장소였다. 지난달 29일 방한해 30일 출국을 계획했던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30일 김해공항으로 입국하는 시진핑 주석의 접점은 30일 김해공항 뿐이었다. APEC 정상회의 개최 수개월 전부터 경주냐, 서울이냐로 각종 회담 장소 추측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베일에 쌓인 나래마루는 경호와 안보를 지킬 ‘묘수’이기도 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나래마루는 올해 리모델링도 마쳤다. 나래마루 회담 사실이 본보 보도로 알려진 다음 날인 지난달 29일 두 국가는 회담 성사 사실을 알리며 개최 장소로 ‘BUSAN’을 발표했다.

나래마루는 2005년 APEC 부산 정상회의 당시 조성됐다. 국민들에게 익숙한 해운대 동백섬 누리마루와 조성 시기가 같다. 누리마루처럼 해운대의 절경을 품고 있지는 않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단시간에 외교적 가치를 드높였다. 미국과 중국이 단독 회담을 가진 건 2019년 일본 오사카 G20 회담 이후 6년 만이었다. 미중 갈등이 최정점을 향해 치닫던 시기에 만난 두 정상은 이 자리에서 관세 인하, 희토류 규제 유예 등 세계적 무역 현안에 합의했다. 세계 정세의 변곡점에서 두 정상의 회담 장소가 부산 나래마루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부산이라는 도시 홍보 효과는 컸다.

APEC 정상회의가 끝나고 경주는 APEC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경주 호텔에 투숙하며 아메리칸 치즈, 케첩을 추가했던 치즈 버거는 별도 상품으로 판매를 계획 중이다. 시진핑 주석이 극찬했던 경주 황남빵은 예약 대기가 한 달가량 걸려 있다. APEC 정상회의가 열렸던 화백컨벤션센터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한미, 한중 정상회담이 실제 진행된 회의장을 다음 달 28일까지 공개한다.

부산은 조용하다. 전 세계가 부산을 주목했던 그 이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공군 기지 내 위치해 있는 나래마루의 개방, 관광은 부산의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다. 보안 시설인 탓에 상시 개방이 어렵다면 비정기적으로라도 역사의 장소를 알리는 방법은 가능할 것이다. 사례는 가까이에 있다. 2005년 APEC 이후 누리마루에는 2000만 명 이상이 방문했다. 2005년 누리마루를 넘어 2025년 세계 최정상 국가의 외교 무대였던 나래마루의 시대를 열기 위한 적극적인 행정, 협의가 필요한 때다.


김준용 기자 jundrag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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