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K푸드의 심층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외국인 평범한 우리 음식 열광 이유는
한국인 미각 예민 먹거리 종류 세분화
재료 다양한 배합, 독특한 문화 만들어
외국에선 우리처럼 다양한 분류 안 해
한류에 편승한 단순한 인기가 아니라
맛의 극한까지 밀어붙인 전통의 저력
1977년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했을 때, 우리 국민들은 모두 뿌듯한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50년 만인 2024년에 K푸드와 농산업 제품만 130억 달러 이상을 수출하였다. 그 중 라면이 13.6억 달러, 조미김 6.3억 달러, 김치가 1.8억 달러에 이르렀다. 그밖에도 개별 품목으로 만두, 냉동김밥, 콘도그, 떡볶이 등도 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요즘은 외국인들이 고추장에도 주목하여 매우면서도 달콤한 음식을 만드는 소스로 쓴다고 한다. 그래서 달다(sweet)와 맵다(spicy)는 말을 합친 스위시(swicy)라는 말이 빈번하게 쓰인다고 한다. 도대체 왜 우리가 먹는 평범한 음식에 외국인들이 열광하는지 의아하기도 하다. 그 때문에 K푸드의 유래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져서, 작년에 국민생활과학자문단은 K푸드의 탄생과 발전 역사, 그리고 영양학적인 우수성 등을 탐구하는 행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논의 속에서도 우리나라 산림에서 다양한 풀이 자라므로 그것으로 여러 가지 반찬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콩에도 주목하여 콩을 가지고 간장·된장을 만들고, 고춧가루를 섞어서 고추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다양한 산나물들을 구할 수 있다. 잎이 넓은 풀은 애기똥풀 등 몇 가지만 제외하면 다 먹을 수 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우리 음식 문화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우리나라는 산도 많지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기도 하다. 당연히 우리의 음식문화는 바다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아침 밥상에서 구운 생선 한 마리, 미역국, 갓 구운 김을 올리는 경우가 흔하다. 제사상에도 여러 가지 생선과 문어, 심지어 상어도 올린다. 최근 역시 K푸드로 주목받고 있는 해산물로는 김과 미역이 있다. 원래 서양에서는 해초들을 바다 속에서 자라는 잡초(sea weed)로 여겼다. 그래서 이 해초든 저 해초든 구별없이 바다 잡초였다. 다시마는 영어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원래는 칼리나 요오드를 만들기 위해서 다시마를 태워서 얻은 재를 가리키는 용어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김도 참김, 돌김, 곱창김, 파래김으로 나눈다. 먹을 때도 구운 김, 조미 김, 김부각, 김무침, 김떡, 김볶음 등으로 나눈다. 미역도 넣는 부재료에 따라 전혀 다른 맛으로 변하고, 산모가 반드시 먹어야 할 음식이었다. 이 지점이 바로 K푸드의 원점이다. 우리의 미각은 대단히 예민하다.
예민한 미각은 우리의 수산물의 명칭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사상에 올리는 문어, 산 채로 즐겨 먹는 몬도가네급의 낙지, 볶음요리로 즐기는 주꾸미는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분명히 다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맛도 서로 다르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우리와 같이 문어류를 먹는 일본조차도, 이 세 종류를 하나로 묶어서 인식한다. 문어는 ‘물문어’, 낙지는 ‘팔이 긴 문어’, 주꾸미는 ‘밥알 문어’, 결국 셋 다 ‘문어’인 셈이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서로 구별하지 않는다. 우리가 즐겨 먹는 조기나 민어도 마찬가지이다. 조기는 참조기, 침조기, 수조기, 백조기(보구치), 부세 등으로 나눈다. 역시 이웃한 일본은 조기, 보구치, 부세의 구별이 없었다. 다 같은 조기다. 나중에 우리말을 그대로 써서 부세라는 이름도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면 우리는 왜 각각 다르게 이름을 붙였을까? 바로 생선의 맛 때문이다. 형태는 잘 모르지만, 먹어보면 맛과 고기의 결과 색상으로 조기인지, 부세인지, 보구치인지 구별할 수 있으므로 이름을 다르게 붙인 것이다. 조기와 민어를 나누는 지점도 마찬가지다. 그 맛이 다르기 때문에 구별하지만, 외국으로 가면 두 물고기를 크게 구별하지 않는다. 생김새도 비슷한 데다 둔한 입맛으로는 그 차이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각이 예민하기 때문에, 먹는 음식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중 하나가 젓갈이다. 일본도 젓갈을 먹지만, 종류는 많지 않다. 오징어가 압도적으로 많고, 해삼 내장, 은어 내장, 참치 내장, 연어를 젓갈로 만드는 정도다. 명란젓과 창란젓은 우리나라에서 배워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만드는 젓갈은 종류도 많고 맛도 다양하다. 소금만 아니라 마늘·고춧가루로 함께 쓰기 때문이다. 멸치젓과 새우젓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새우젓도 추적(추젓) 육젓 오젓 등으로 나눈다. 그밖에도 황석어젓, 조기젓, 꼴뚜기젓, 조개젓, 홍합젓, 밴댕이젓, 참게젓, 갈치속젓, 전어밤젓, 등피리젓, 대구모젓, 대구장지젓, 명태아가미젓, 자리돔젓, 토하젓, 낙지젓, 소라젓 등등, 젓갈로 만들 만한 건 다 만들었다. 동시에 그런 젓갈의 서로 다른 독특한 맛을 인정하고 소비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K푸드가 그저 한류의 유행에 편승한 결과라고 할 수 없는 이유다. 극한까지 밀어붙인 우리 음식의 종류와 맛이 그 밑바탕에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