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금정산, 천년의 숨결로 세계 속 도심형 국립공원으로
정여 조계종 금정총림 범어사 방장
부산의 영산(靈山) 금정산이 대한민국 최초의 도심형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는 단순히 행정적 명칭이 바뀐 것이 아니라, 한 시대의 의식이 바뀌는 상징이다. 금정산은 오랜 세월 동안 부산의 정신적 지주이자, 부산 시민의 마음이 머무는 산이었다. 그리고 천년 고찰 범어사의 품 안에서 수행의 숨결과 시민의 삶이 함께 호흡해온, 그야말로 ‘산과 사람이 공존해온 시간의 증언자’이다.
14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범어사는 금정산의 자락 아래에서 수많은 시대의 변화를 지켜보았다. 전란과 산업화, 그리고 도시의 팽창 속에서도 이 산은 늘 변함없이 자비와 평화의 품을 내어주었다. 수행자들에게는 깨달음의 터전이 되었고, 시민들에게는 지친 일상을 위로하는 쉼의 공간이었다. 수많은 불자와 시민이 이곳을 오르내리며 자연과 마음을 함께 닦아온 시간, 그것이 바로 금정산이 품은 진정한 역사이다.
이번 국립공원 지정은 금정산이 가진 불교적 가르침과 현대적 생태 가치가 결합되는 전환점이다. 불교가 말하는 ‘공존’과 ‘화합’의 정신은 생태의 언어로 번역되어, 생명 존중과 환경 보전이라는 현대 문명사회의 화두와 만나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서 천년의 숲이 숨 쉬고, 그 속에서 시민이 명상하고 어린이가 생명을 배우는 풍경, 이것이 바로 금정산이 지향해야 할 도심형 국립공원의 모습이다.
불교가 전하는 공존의 의미는 단순히 함께 존재하는 것을 넘어서 서로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다. 산은 인간에게 쉼과 깨달음을 주고, 인간은 산을 돌보며 그 생명을 이어준다. 한 그루의 나무, 한 줄기의 물, 한 줌의 흙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음을 아는 것, 그 깨달음이 바로 불교적 공존의 실천이다. 범어사는 이러한 철학을 시민과 나누어 도시 속의 명상길, 마음의 쉼터를 조성하고자 한다. 이는 금정산이 지닌 자비와 생명의 숨결을 현대 사회 속에 되살리는 일이다. 금정산은 단지 부산의 산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산이며, 인류가 함께 지켜야 할 자연유산이다.
국립공원 지정은 부산이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생태도시로 도약하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다. 금정산이 품은 생태계는 단순한 녹지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자연이 다시 만나 서로의 존재를 회복하는 생명의 터전이다. 범어사는 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 시민과 불자, 그리고 환경단체와 손잡고 금정산의 생태계 보전과 문화유산의 전승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산사와 도시가 함께 이어지는 새로운 공존의 모델, 그것이 바로 금정산이 나아가야 할 길이다. 명상 숲길을 조성하여 시민들이 마음을 고요히 다스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청소년과 외국인을 위한 생태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의 가치를 배우게 할 것이다. 또한 국제적 환경 교류를 통해 금정산의 사례를 세계와 공유하며, 지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것이다.
세계는 지금 기후 위기와 환경 붕괴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러한 때에 금정산의 국립공원 지정은 단순히 지역의 경사에 머무를 일이 아니다. 이는 인간의 삶과 자연의 조화를 다시 묻는 문명적 성찰의 기회이다. 우리는 금정산을 통해 ‘산이 사람을 품고, 사람이 산을 지키는’ 새로운 윤리를 세워야 한다. 이것이 바로 불교가 전해온 자비의 정신이 오늘의 언어로 구현되는 길이며, 동시에 부산이 세계 속에서 보여줄 새로운 생태문명의 모델이다.
금정산은 오래된 산이지만, 여전히 살아 있는 생명의 산이다. 그 품 안에서 수많은 생명이 깃들고, 인간의 마음 또한 다시 숨을 쉰다. 천년의 도량 범어사는 앞으로도 이 산이 지닌 자비의 숨결을 지켜낼 것이다. 이번 국립공원 지정은 그 첫걸음이며,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약속이다. 금정산이 부산의 시민은 물론 세계인 모두에게 평화와 깨달음의 공간으로 남을 수 있도록, 범어사는 그 뜻을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