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력 기준 GDP’ 한국, 대만보다 2만 달러나 낮다
IMF, 실질 구매력 반영 비교
올해 한국 세계 35위·대만 12위
코로나19 이후 韓 인플레 높아져
한국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느끼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수준이 대만보다 연간 2만 달러 이상 낮다는 국제통화기금(IMF)의 분석이 나왔다. 올해 명목 기준 1인당 GDP가 22년 만에 대만에 따라잡힐 것이 확실해지는 가운데 구매력 기준 1인당 GDP도 이미 오랜 기간 대만에 미치지 못해왔다는 뜻이다. 코로나19 이후 가팔라진 물가 인상이 원인으로 꼽힌다.
21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IMF는 지난 15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World Economic Outlook)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구매력 평가(PPP·Purchasing Power Parity) 기준 1인당 GDP가 6만 508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6만 2885달러)보다 3.5% 오를 것으로 봤다.
IMF가 매년 두 차례 추산하는 PPP 기준 1인당 GDP는 국가 간의 생활 수준을 비교하기 위해 화폐의 실질 구매력을 반영한 1인당 GDP를 가리킨다. 동일한 재화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실질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수치로, 물가 수준이 낮으면 이 수치도 상대적으로 높게 평가된다.
한국의 PPP 기준 1인당 GDP는 1980년 2200달러, 1990년 7741달러, 2000년 1만 7432달러, 2010년 3만 2202달러, 2020년 4만 7881달러 등으로 상승해왔다. 올해 수치는 세계 35위 수준이다.
반면 대만의 올해 PPP 기준 1인당 GDP가 8만 5127달러에 달해, 한국보다 2만 47달러 높을 것으로 전망해 눈길을 끌었다. 대만의 명목 기준 1인당 GDP가 올해 3만 7827달러로, 2003년 이후 처음 한국(3만 5962달러)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PPP 기준으로는 이미 크게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대만의 PPP 기준 1인당 GDP는 1980년 3214달러, 1990년 9534달러, 2000년 2만 463달러, 2010년 3만 6619달러, 2020년 5만 7996달러 등으로 내내 한국보다 높았다. 올해 국제 순위도 12위로 한국보다 23계단 위였다.
대만 국민의 실제 생활 수준이 이처럼 높게 평가되는 이유는 인플레이션이 비교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해외 주요 투자은행(IB) 8곳이 제시한 대만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는 9월 말 평균 1.7%에 그쳤다. 물가 상승률이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5.3%)보다 현저히 낮은 것은 물론, 지난해 물가 상승률(2.18%)보다 크게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셈이다.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최근까지 2%대로 대만보다 높게 유지되는 것과 차이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만 보더라도 한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1년 2.5%, 2022년 5.1%, 2023년 3.6%, 2024년 2.3% 등으로, 대만이 2021년 1.97%, 2022년 2.95%, 2023년 2.49%, 2024년 2.18% 등을 기록한 것보다 매년 높았다.
한은은 지난 8월 수정 경제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1.9%에서 2.0%로, 내년 전망치를 1.8%에서 1.9%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전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내 기본 생필품 가격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다양성이 적기 때문”이라며 “농산물과 축산물이 전반적으로 동질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은은 시장 개방이 해결책이라는 의견을 이미 제시했다”며 “구조 개혁에 관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한은은 지난해 12월 보고서에서 저가 상품 가격이 고가 상품보다 더 크게 오르는 이른바 ‘칩플레이션’(cheapflation) 현상으로 취약계층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