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해운대의 밤 바다
장희석 부경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
최근 미국 하와이에 가서 와이키키 해변을 구경했다. 그동안 주위에서 와이키키 해변과 우리나라 해운대의 해변을 비교하는 이야기를 적지 않게 들어왔기에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이 많았었는데 이번에 그런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와이키키 해변의 길이는 해운대 해변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보였지만 백사장의 폭은 해운대 백사장 폭의 거의 절반 정도라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와이키키 해변은 수심이 얕아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꽤 먼바다까지 나가서 즐겁게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바닷가의 수온이 일년 내내 수영하기에 적당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와 있었고, 또한 백사장과 바로 인접한 이면 도로에는 세계적인 명품숍들과 화려한 호텔 및 리조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었다. 과연 하와이라는 이름에 걸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키키 백사장의 한쪽 끝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서 차 한잔 마시면서 자연스레 와이키키 해변과 해운대 해변을 서로 비교해보았다. 해운대 해변은 백사장 폭도 와이키키보다 훨씬 더 넓으며 주위에는 송정 바다까지 이어지는 시원한 전경의 해안 산책로가 있고, 또한 반대쪽으로는 아름다운 동백섬이 바로 옆에 있는 멋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어느 곳의 해변과 비교하여도 결코 뒤처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판단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천혜의 자연을 오래도록 잘 보존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보았다.
지난 여름, 낮에는 너무 더워서 저녁을 먹은 후 운동 삼아 해운대 바닷가 해변도로로 산책을 자주 나갔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있었고 외국인들도 꽤 많이 보였다. 처음 산책을 하는 날에 웨스틴조선부산 호텔을 지나서 조금 더 걸어가니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조금씩 들려오기 시작했다. 요즈음 가끔 들을 수 있는 ‘버스킹’이란 단어를 떠올리면서 걸어갔는데 얼마 안가서 또 다른 노래가 반주에 맞추어 들려왔다. 두 개의 노래가 섞여 들리면서 조금은 소란스럽다고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계속 걸어갔는데 곧이어 또 다른 노랫소리가 반주에 맞추어 이제는 시끄럽다고 느낄 정도로 들려왔다.
그러한 상황은 해운대 바닷가의 거의 절반 정도 갔을 때까지 짜증스럽게 반복되었다. 그렇지만 짜증을 조금씩 달래며 미포 입구까지 걸어갔었는데 돌아오는 길에 또다시 소란스러운 노랫소리에 시달려야만 했었다. 그날 이후 여러 번 해운대 밤 바닷가로 산책을 나갔었지만 지난번과 거의 똑같은 상태의 반복이었다.
와이키키 해변의 밤 바다는 백사장에 불빛이 별로 없어서인지 어두움 그 자체인 것 같았다. 그러나 해변에 인접한 이면 도로에는 거리 곳곳의 기둥에 설치된 조그만한 횃불들이 활활 타오르는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밤의 하와이를 즐기며 크게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거리에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간혹 보였지만 해운대 밤 바다처럼 그렇게 소란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두 해수욕장을 비교해보면서 해운대 밤 바다의 소란스러운 노랫소리에 안타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천혜의 해수욕장이 밤에는 왜 이렇게 시끄럽다고 느낄 정도로 되어가고 있는지, 더위를 피해 밤 바다에 조용히 산책하러 나온 많은 시민들은 과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또한 해운대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외국인들은 해운대의 밤 바다를 거닐면서 과연 어떠한 인상을 받을 것이지.
비록 와이키키 해변의 인위적인 화려함에는 못 미치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해운대 해변의 자연적인 아름다움은 소중히 잘 보살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아름다운 해운대 밤 바다를 즐거운 마음으로 걸으면서 더위도 식혀보려는데 짜증스럽게 겹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는 버스킹이라는 좋은 이름에 조금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것이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