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은 대신이라더니… 산으로 가는 동남권투자공사 논의
공사-은행 양자택일 충돌 토론 실종
권역별 설치하면 재원·실효성 의문
정부가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대안으로 제시한 동남권투자공사 설립이 정치 공방에 휩싸이면서 배가 산으로 가는 격이 됐다. ‘공사냐 은행이냐’ 논쟁이 내년 부산시장 선거를 앞두고 쟁점으로 비화한 탓에 지역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논의가 실종되고 있다는 우려가 크다. 게다가 지방시대위원회가 ‘5극 3특’ 국가균형성장 전략으로 권역별 투자공사를 설립하겠다고 나서면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산 시민에 공약했던 투자은행이 ‘공사’로 뒷걸음을 치더니 이제는 5개 권역에 나눠져 ‘요란한 빈 수레’로 비치는 것이다. ‘산은 대신 투자은행’의 진정성을 믿었던 부산 시민은 허탈함을 감출 수 없다.
우선 공사와 은행의 양자택일 충돌이 건전한 토론을 막고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과 여권의 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사이에 날 선 대립 탓이다. 전 장관은 “은행 규제를 피하려면 공사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박 시장은 “고래(산업은행)를 참치(동남권투자은행)와 바꾸는 게 아니라, 멸치(동남권투자공사)와 바꾸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지역의 기업과 금융권은 눈치를 보면서 입을 닫고 있다. 논란의 핵심인 공사와 은행의 장단점과 도입 시 활용 방안을 따지는 논의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투자 재원 마련에 참여할 부울경 지자체가 논의 구조에서 빠져 있는 것도 문제다.
산은의 지방 이전은 수도권에 쏠린 정책금융을 지역 산업 발전에 투입하려는 취지로 시작됐다. 부산은 금융 중심지이자 해양산업의 거점으로, 산은 이전의 당위성과 실효성이 모두 확보된 곳으로 평가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산은 부산 이전을 추진했지만 결국 불발됐고, 이 대통령이 제시한 대안이 투자은행이다. 그러다 동남권투자공사로 변경됐는데, 이를 지역에서는 산은을 대체하는 역할을 하게 될 동남권 고유 기구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동일한 형태의 권역별 투자공사 설립이 추진되면 본래의 목적과 차별성을 잃는다고 볼 수밖에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둔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가 투자공사 설립을 제시했다면 산은 이전과 동일한 정책적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실효적 방안을 내놔야 한다. 본래 취지대로 지역 전략산업에 대한 투자 기능을 온전히 갖추는 것이 필요 조건이다. 문제는 이대로라면 산은 소속 권역 센터나 정책금융 기능을 각 지역에 분산하는 것에 그칠 수 있다. 투자 재원이 흩어질 것이고, 전문성과 인력 확보도 어렵다. 각 지역 공사의 권한과 역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이는 부산이 해양수도로 도약하고 금융 중심지의 위상에 부합하는 것과 거리가 멀다. 부산 시민에 ‘희망 고문’을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와 정치권, 지자체는 국토균형발전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