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문화도시는 세계적인 꿈을 꾸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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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큐레이터

퐁피두 부산 분관 설립, 시의회 통과
글로벌 시설과 지역 문화 비교는 곤란
예술가와 시민 각각의 삶 존중해야

‘제2의 도시’는 ‘제1의 도시’를 꿈꿔야만 하나. ‘문화의 불모지’ 부산시는 민선 8기 시정 슬로건으로 ‘글로벌 허브 도시’를 내세우며 부산 엑스포 도전을 선언했다. ‘119 대 29’ 전대미문의 참패였다. 객관적인 희망의 데이터는 처음부터 찾아보기 힘들었다. 2022년 1월 19일, 현 부산시장은 엑스포 유치를 위해 방문한 프랑스 파리에서 퐁피두센터 관장과 만나 부산 분관 설립을 합의했다. 2024년 7월 22일 부산시의회 행정문화위원회에 이를 제안해 비공개로 심의했다. 비공개 이유는 퐁피두 측과 비밀리에 협의한다는 합의 때문이었다. 결국, 같은 해 10월 14일 국회 국토위 국정감사에서 당시 업무협약(MOU) 체결 문서가 공개되며 만천하에 알려졌다. 이후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거센 반발이 일어나고 228명의 대학 교수까지 성명에 동참하면서 상황이 극도로 악화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 설립은 지난달 9일 부산시의회 기획재정위원회의 ‘2026년도 정기분 공유재산관리계획안’ 심사를 통해 진통 끝에 통과되었다.

합의 내용을 몇 개만 살펴보자. 제2조 ‘사업 설명’에 ‘퐁피두센터 부산’을 퐁피두 측이 5년 동안 점유한다고 되어 있다. 즉 땅과 건물, 유지 보수, 퐁피두 센터 인력 등 모든 것은 부산시가 부담하는 것이다. 또한 ‘기획전 혹은 일부의 콘텐츠가 전 세계의 타 문화 시설에 제공될 수 있다는 것도 동의한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5조 ‘재무 조건’에는 상설전, 기획전, 교육비와 브랜드 사용료를 합친 연간 120억 원과 세금, 운반비, 보험료 등의 모든 비용을 부산시가 부담한다고 되어 있다. 제9조 ‘언어와 준거법’에 따르면, 부산시와 퐁피두센터 양측은 이 기밀 문서를 프랑스어와 영어로만 작성하기로 하고, ‘본 양해각서는 프랑스법에 따른다’라고 협약했다.

기밀 협약 문건을 만들어 가며 ‘세계적인 미술관’ 분관을 부산에 세운다? 여기에는 어떠한 비밀이 내재되어 있을까. 곧 한화그룹은 서울 여의도 63빌딩에 퐁피두 분관을 개관하는데, KTX로 불과 2시간 30분 남짓 거리에 서양의 근대 미술을 추종하며 부산이 엄청난 기회비용을 지급하는 퐁피두 분관 유치. 그 까닭을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의문투성이다.

‘지역 문화 주권 시대’라는 말은 정치판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다. 실제 지역의 현장에서 체감하는 온도는 싸늘하기 짝이 없다. 왜 지역은 세계적인 꿈을 꾸어야만 지방이라는 촌스러움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요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지 싶다. 부산에서 만들어지는 문화와 미술 생태계가 비교되어야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세계적인 것’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의 올해 8월까지 관람객 수가 400만 명을 넘었고, 연말까지 600만 명에 달할 거라는 예상을 다룬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는 세계 박물관 순위에서 5위권 안에 드는 수치다. 한국의 문화를 알기 위해 매일 줄을 서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부산 혹은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지역’을 보고 싶어 한다. 굳이 부산에서 ‘퐁피두센터’를 만날 이유가 없다. 파리에 가면 된다. 굳이 ‘퐁피두’라는 이름을 빌려 서구적 세계화에 종속관계의 빌미를 만드는 일을 후세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문화 사대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공공 행정과 욕망을 시민들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인정 욕망의 과잉 시대를 추종하듯 관의 주도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지역의 예술가와 시민들 각각의 삶을 존중하며 각자의 모습을 담아내는 도시가 되어야 세계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부산다운 도시로 살아간다. 이미 부산은 산과 바다를 품은 아름다운 도시로 소문나 관광객들이 몰려오고 있다. 또한 많은 예술가도 문화 이민을 오고 있다. 거시적 관점에서 생태계를 유지해야 함에도 예술인복지센터 하나 없는 게 현실이다. 생태계의 숙주와도 같은 문화 생산자들의 유입을 받아들일 장치 하나 없는 셈이다.

제일 우선시 되는 문제는 이것이다. 지금 기후위기 앞에서 무슨 발상인가! 앞으로 닥칠 자연의 엄청난 재앙에 속수무책이다. 여태껏 잘 지켜온 천혜의 이기대 숲은 64%나 훼손될 우려가 있다. 콘크리트 건물 9개가 들어서면 숲은 사라진다고 보아야 한다. 무리한 일정으로 환경영향평가나 절차 없이 이 사업을 굳이 밀어붙이는 부산시의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올해 말까지 계약이 체결되어야 한다고 한다. 부디 없던 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예술가들은 지금도 자기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작두 타듯 하는 삶을 살아가기에도 벅차다. 이들이 더 이상 거리로, 현장으로 나가 모질음을 쓰게 하지 말자. 투명하고 상식적인 도시에 살고 싶다. 시민들도 마찬가지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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