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전자정부, 디지털정부, AI정부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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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자원 화재로 국가 전산망 먹통
완전 복구에 한 달 국민 불편 지속
카카오 사태 겪고도 이중화 하세월
IT 강국 이면 시스템·관리 부실 민낯
국민 안전 비용과 행정 실천 따라야
우리 사회가 지나친 기본 돌아볼 때

코로나19 팬데믹 아래에서 치러진 2020년 총선은 대한민국 디지털정부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이는 계기가 됐다. 많은 국가가 바이러스 확산을 우려해 선거를 미룬 상황에서 한국은 높은 투표율 속에 성공적으로 선거를 치러냈다. 당시 CNN 등 외신은 총선 투표 현장을 생중계하며 “한국이 팬데믹 속에서도 무엇이 가능한지 증명했다”라는 평가를 내놓았다. 당시 기자도 신문사 인근 좌천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사전 투표를 했는데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착용하고 자동으로 출력된 투표용지로 간편하게 주권 행사를 마치면서 ‘우리나라 참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팬데믹 속 성공적 총선을 가능하게 했던 배경에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정부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전자정부의 기틀을 놓은 건 김대중 정부다. 김 대통령은 1998년 2월 취임사에서 21세기 첨단산업 시대 기술 강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세계에서 컴퓨터를 가장 잘 쓰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다. 세계 최초로 전자정부법을 제정하고 2002년 12월부터 전자정부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비전이 ‘단번에 통하는 온라인 정부’였다.

이런 기반 위에 업그레이드를 거듭한 한국의 전자정부는 유엔과 OECD 평가에서 수차례 1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했고, 개발도상국이 벤치마킹하는 모델이 됐다. 행정안전부는 2020년 기존 전자정보국을 디지털정보국으로 개편하고 디지털정부로의 대전환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서 벗어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국민 요구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의 디지털정부가 지난달 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센터 화재로 한순간에 멈췄다. 화재는 무정전전원장치(UPS)용 리튬 배터리를 지하로 옮기는 작업 중 불꽃이 튀면서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다. 리튬 열 폭주로 진화에 어려움을 겪었고 국가 행정업무 시스템과 민원 서비스 등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게 됐다. IT 강국 대한민국에서 수기로 민원을 처리하는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복지부 ‘e하늘장사정보시스템’도 마비되면서 고인을 떠나보내는 길에도 어려움이 따른다고 한다.

국민을 더 속 터지게 하는 것은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디지털정부의 이면에 감춰져 있던 시스템 미비와 관리 부실의 민낯을 마주하게 됐다는 사실이다. 비상시 국가 전산망 보호를 위한 이중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아 피해가 커졌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2022년 카카오톡 먹통 사태 당시 IT 인프라 이중화 미비가 지적되자 통신사에 의무를 강제했던 게 정부다. 이어 2023년 발생한 전국 행정망 먹통 사태까지 겪고도 국가 전산망 보호를 게을리한 책임을 어떻게 물어야 하나.

1년 전 수명을 다한 노후 배터리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고 하고 90cm 이상 돼야 하는 배터리 이격 간격이 60cm에 불과했다고 한다. 시스템과 관리 부실이 이 지경인데도 카카오톡 먹통 사태 당시 국정자원 원장은 ‘화재 시 3시간 내 시스템 복구’를 호언장담했다고 하고 1년 전 대전센터에서 화재 상황을 가상한 모의 훈련까지 진행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런 영혼 없는 공무원들에게 국민 안전을 믿고 맡겨도 되냐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의 신속한 복구 지시에도 행정 시스템의 정상화까지는 한 달 정도 걸릴 전망이다. 실시간 백업은커녕 통째로 날아간 데이터도 있어 보인다. 차제에 사태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고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마땅한 일이다. 동시에 그동안 속도전 속에 달려오면서 우리 사회가 놓치고 지나왔던 중요한 기본들을 다시 돌아봐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기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곳이 어디 대전센터뿐일까.

이재명 정부는 출범 후 디지털정부에서 나아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유능하고 효율적인 AI 민주정부를 만들겠다며 ‘세계 1위 AI정부 실현’을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 보듯이 안전과 보안이 전제되지 않은 AI정부는 허상이고 사상누각일 뿐이다. 디지털 전환이 가속할수록 국가 안보마저 위태롭게 할 뿐이다.

이 대통령이 국민주권정부를 표방하며 국민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누차 강조하고 있지만 호언장담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안전에는 비용이 소요되고 행정의 실천도 따라야 한다. 국가 전산망 이중화를 위한 공주센터가 예산 부족으로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얼 말하겠는가. 평소에는 폼도 나지 않고 중요성도 간과하기 쉽지만, 마땅히 비용을 감수하고 묵묵히 매뉴얼에 따라 행정을 작동시켜야 하는 일, 그게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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