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로컬 매터스’
이대진 지역미래팀 차장
로컬 매터스(Local Matters). 우리말로 '지역이 중요하다' ‘지역 문제들’ 쯤으로 해석되겠다. 굳이 영어로 쓴 이유는 고유 명사이기 때문이다. 로컬 매터스는 미국 전역의 지역언론 보도 중 좋은 기사를 엄선해 소개하는 뉴스레터 서비스다. 세계 이슈, 전국뉴스 흐름을 따라가기도 벅찬데 지역뉴스를 다룬 뉴스레터를 누가 받아볼까 싶지만, 내년이면 10돌을 맞는다.
지난 1년, 미주리 저널리즘 스쿨에서 해외연수를 진행하며 마주한 미국 언론계 현실은 우리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최근 20년 동안 미국 지역신문의 3분의 1 이상이 사라졌다. 해당 지역의 뉴스를 다루는 매체가 단 하나도 없는 카운티, 소위 ‘뉴스 사막’(News Desert)이 200곳이 넘는다. 뉴스 사막화 속에서 길을 찾아 헤매다, 오아시스처럼 발견한 것이 로컬 매터스다. 매주 일요일, 이메일로 도착하는 뉴스레터를 열어 보면 탬파베이·디트로이트·뉴올리언스·시애틀 등 미 전역의 지역언론에서 선별한 알찬 기사가 배달돼 있었다. 문득 궁금해 AI에게 물어 보니, 로컬 매터스 구독자는 2020년 기준 4600명 수준이다. 메일함에 도착한다고 모두 열어 보는 건 아닐 테니 많아야 수천 명 정도에게 읽히는 셈이다. 온라인에서 눈에 띄는 제목만 달아도 기사 한 건에 수만 조회수가 나오는 시대인데, 고작 1만 명도 안 되는 독자라니. 로컬 매터스 운영진은 무슨 생각으로 서비스를 이어가는 걸까.
귀국을 몇 달 앞둔 올여름, 미국탐사보도협회(IRE)가 주관하는 연례 콘퍼런스인 ‘IRE25’ 행사장에서 로컬 매터스 제작진을 만났다. 그러고 의문 부호는 느낌표로 바뀌었다. 로컬 매터스는 별도 직원 없이 전국 각지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운영에 참여한다. 자신이 속한 언론사에서 취재하고 기사를 쓰다 짬을 내 뉴스레터를 만드는 식이다. 사실상 자원봉사나 다름없지만 운영진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 기자는 “로컬 매터스를 제작할 때마다 ‘훌륭한 지역보도’란 주제의 강의를 듣는 것 같다”며 “덕분에 기사 아이디어도 정말 많이 얻고, 뛰어난 기자들도 알게 됐다”고 했다. ‘후배’의 반짝이는 눈빛이 17년 차 기자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언론이, 신문이, 지역언론이 어렵지 않은 시기가 있었던가.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는 안토니오 그람시 말처럼, 묵묵히 행동하는 이들이 있어 뉴스는 계속되고 세상은 나아간다. 로컬 매터스 하나로 뉴스 사막화를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속도를 조금이나마 늦춘 건 분명하다.
로컬 매터스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건 IRE와 나이트재단의 후원을 받는다는 점이다. 미국은 사회 각 분야에서 공익적인 활동을 지원하는 비영리기관이 수두룩하다. 언론도 주요 대상 중 하나다. 의지로 낙관할 수 있도록 돕는 지원군 덕분에, 사라지는 속도만큼은 아니지만 새 지역언론이 꾸준히 생겨나고 있다. 미국 이야기는 여기까지. 이제 한국 땅을 밟은 이상, 먼 나라 상황을 마냥 부러워하고 있을 수는 없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선후배 동료 기자들과 함께 우리 고장의 ‘로컬 매터스(지역 문제들)’를 조명하고 뉴스 사막을 줄이려 부지런히 뛰겠다고 다짐해 본다. 쓰고 보니 ‘이런 글은 일기장에나 쓰라’는 댓글이 달릴 것 같다. 악플이라도 감사하다. 독자의 관심은 지역언론에 오아시스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