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누가 사법 신뢰를 무너뜨리나
논설주간
여권의 대법원장 사퇴 요구 선 넘어
대통령 선 그었지만 ‘삼권 서열’ 논란
사법 신뢰 실추는 국민 피해로 직결
내란특별재판부 위헌 논란 귀담아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논의
법원과 국민 참여 속에 숙의돼야
사법부를 향한 정부와 여당의 공세가 거세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5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퇴를 공개 요구했다. “대법원장이 그리도 대단하냐, 대통령 위에 있느냐, 국민의 탄핵 대상이 아니냐”라는 거친 언사까지 동원하면서다. 민주당이 추진 중인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해서도 “조희대의 정치적 편향성과 지귀연의 침대 축구가 불러온 자업자득”이라고 날을 세웠다.
여권 내 강경파들의 맹공은 대법원이 민주당의 사법개혁 속도전에 우려를 표명한 가운데 나왔다. 대법원은 12일 전국법원장회의를 열고 “사법 독립은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며 대법관 증원, 법관 평가 등에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사법제도 개편은 국민과 사회 전반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하며, 폭넓은 논의와 숙의 및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공식화했다.
여권의 대법원장 사퇴 요구는 대법원의 반발에 대한 반격의 성격이 강하지만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삼권 서열’ 발언을 한 게 기름을 부은 측면도 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에는 권력의 서열이 분명히 있다. 최고 권력은 국민, 그리고 직접 선출 권력, 간접 선출 권력”이라고 서열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내란특별재판부, 그게 왜 위헌인가. 사법부 구조는 사법부 마음대로 정하는 게 아니다. 입법부 권한이다”고 못 박았다.
이 대통령 발언은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삼권분립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위헌적 측면이 있다는 법조계의 우려가 뒤따랐다. 법을 만드는 사람, 법을 집행하는 사람과 법에 따라 심판하는 사람을 분리하는 게 삼권분립의 정신이자 법치의 기본이라는 것이다. 우리 헌법은 권력은 오로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언하지만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입법·행정·사법의 서열을 매기지 않는다. 국민주권조차 절대적이지 않으며 ‘다수결의 한계’까지 받아들인 결과가 삼권분립이라는 게 법학자들의 해석이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민주당에 국회 다수 의석을 몰아줬지만 위임한 권한이 사법부까지 좌지우지하라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사법권 독립의 본령은 법과 양심에 따른 법관의 공정한 재판을 의미하지만 이를 위한 법관 구성과 조직상의 독립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내란특별재판부에 대한 위헌 논란이 불거지는 이유다. 사건은 재판부에 무작위로 배당되며, 내란 재판부도 그에 따라 사건을 배당받았다. 법원의 정당성은 그 무작위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조 대법원장도 지 부장판사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다는 게 사법권 독립이다.
대법관 증원도 마찬가지다. 증원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시기와 방법을 둘러싼 사법권 독립 침해 우려가 본질이다. 국민의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두텁게 보호하기 위한 대법관 증원 요구는 법원 내에서도 꾸준히 제기된 사안이다. 그러나 이 또한 하급심 강화, 대법원 전원합의체 기능 약화 등 다양한 논란이 뒤따라 근본적 해결책에 대한 숙의가 필요하다. 민주당이 14명인 대법관 수를 26명으로 증원하는 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베네수엘라 차베스 같은 권위주의 정권의 사법부 장악 시도와 다를 바 없다.
물론 사법부 스스로 불신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자기 확신과 고집으로 스스로를 성역화한 높은 담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국민의 삶에서 멀어진 건 아닌지도 돌아봐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정치권이 사법부를 마음대로 흔들어도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재명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 1·2심 판결이 유·무죄로 엇갈린 것도, 재판이 오랜 기간 지연된 것도, 대법원이 신속하게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도 모두 재판의 결과다. 특정 판결만 떼어내 편향적이라 공격하는 것 자체가 정략적이다. 대법원장이 대선에 개입한 자업자득이라지만 정치 보복으로 비치는 게 더 문제다. 그 또한 법적 절차를 통해 해소돼야 하는 게 법치다.
특히나 대통령이 대법원장 거취를 압박하는 듯한 인상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여당의 대법원장 사퇴 공세에 공감을 표시했다는 오해가 일자 대통령실이 긴급하게 진화에 나섰지만, 더 신중해야 할 일이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 실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국면에서 우리는 서부지방법원 폭동 사태를 지켜보며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목도했다. 당시 폭동 사태 배후로 지목돼 경찰 수사를 받는 전광훈 목사가 내세운 게 국민저항권이었다.
미국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기관에 늘 꼽히는 게 군대와 함께 연방대법원이다.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의 배후에 연방대법원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한 과제의 하나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사법부다. 사법개혁의 방향은 이런 공감대 속에 숙의돼야 한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