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기록으로 그림 읽기] 백자달항아리가 예술작품이 된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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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백자달항아리, 18세기, 높이 41cm, 몸통지름 4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백자달항아리, 18세기, 높이 41cm, 몸통지름 4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옛날에 쓰던 물건이 예술 작품으로 인정받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다. 조선시대에 매일 밥상에 올랐을 그릇들이, 옷이나 이불을 넣었던 목가구가, 선비가 사랑방에서 쓰던 문방구들이 지금은 박물관 진열장에 넣어져 귀하게 대접받는다. 이것만 봐도 예술은 생활과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조선시대 그릇인 백자달항아리도 언제부턴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미술품이 되었다.

달항아리는 아무 그림도 기교도 없이 오직 장인의 순수한 마음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도 빌 게이츠도 샀고, 방탄소년단 RM도 샀다고 기사가 날 정도로 인기 있다. 그래서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도 온갖 상품으로 재제작되어 팔리고 있다. TV 홈쇼핑에서도,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광고한다. 이처럼 지금 우리는 조선시대에 달항아리를 만든 목적과는 아주 다르게 소비한다. 달항아리를 예술로 대접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품으로 변환하는 현상을 만들어 냈다.

지난 3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18세기 조선 달항아리가 41억 원에 낙찰되었다. 낙찰받은 이는 미국인이라는데, 그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달항아리가 가진 아름다움을 진정 알고 샀을까. 아마도 달항아리가 예술 작품으로 바뀌는 긴 시간 속에서 형성된 우리 문화와 사상과 생활을 이해하고 낙찰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달항아리 형태와 색 그리고 역사가 만든 갖가지 이야기와 해석에서 형성된 미학, 더욱이 자신의 미적 취향에 들어맞았기에 샀을 것이다. 한마디로 달항아리를 부엌에서 쓰던 도자기 그릇이 아니라 한국에서 만든 예술 작품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시대는 달항아리가 옛날부터 예술 작품으로 다루어져 왔던 것처럼 착각할 지경이지만 조금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금세 이해할 수 있다. 달항아리를 만든 조선시대 도공은 부엌살림에 여유가 있는 집이라면 꼭 필요한 항아리를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달항아리 크기나, 색이나 궁궐이나 지체 높은 집에서 사용했을 법하므로 주문 제작이었을 수도 있다. 하여튼 능숙한 장인은 특별한 기교나 재주를 부리지 않고 덤덤하게 물레를 돌려 항아리를 빚었을 것이다. 그 시대가 그런 항아리를 필요했기에 만들었을 것이다. 미술사에서 ‘시대를 반영한 것’이라고 흔히 표현하는 말에 딱 들어맞는 것이 달항아리다.

하지만 물건이 예술 작품이라는 지위에 올라가기에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거기에는 긴 시간 동안 쌓인 많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이름도 없이 그저 항아리로 불리다가 백자달항아리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100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긴 세월 동안 우리 생활 곁에 있으면서 우리의 슬픔과 기쁜 이야기를 담아냈기에 지금 우리는 그것을 예술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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