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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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수필가

존 덴버의 경쾌한 통기타 연주가 반갑다. 이곳이 어디인가. 동천강을 가로지르는 일명 ‘썩은다리’라 불리는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없는 게 없다는 ‘문현동 골동품거리’이다. 오가는 젊은이들은 드물지만, 옛 주택과 작은 노포들이 빽빽하고 뉴트로 열풍까지 더해지니 요즈음 사람들은 ‘문현동 을지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군데군데 자리 잡은 골동품점을 눈에 담는다. 칼국숫집과 보리밥집과 다방과 이발소도 보이고 ‘골목에 가래침을 뱉지 맙시다’라고 쓴 붉은 페인트 글씨도 정겹다. 십수 년 전부터 하나둘 생기기 시작한 가게들이 제법 터를 잡았다.

진귀한 것이 수두룩하다. 맷돌, 절구, 문짝이 가게 밖에서 눈길을 잡고, 서화, 도자기, 방짜 그릇, 성냥갑, 목공예품 등이 안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입구에 흑색 옻칠을 한 선비상이 고졸한 멋을 풍긴다. 가게 안으로 슬쩍 발길을 옮겨 본다. 다소곳한 고가구 몇 점이 격조 있게 들앉았다. 무쇠 장식이 돋보이는 전주 나비장의 좌우대칭 무늬가 곱다. 흑백 텔레비전, 다이얼 전화기, 교환 전화기, 태엽 감아 돌리는 전축,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젊은 모습이 그려진 서부극 비디오테이프도 보이고, 백야성, 황금심, 백설희의 이름자가 선명한 LP 음반도 빼곡하다. 그 속에서 신식 노트북이나 골프채들이 이방인처럼 시침 뚝 떼고 끼어 있다. 마치 근대화 박물관을 방불케 한다.

이색적인 문현동 골동품거리

뉴트로 인기, '을지로'라는 별명

별별 물건들로 가득 찬 만물상

사라지는 것 다시 만나는 감동

주인장의 성격에 따라 비치한 물건들도 다 다르다. 소반과 찬탁, 돈궤와 뒤주 등 나무 소품이 많은 집, 백동 호롱과 궁중 자물쇠, 고려 수저와 청동 뒤꽂이, 꽃고무신과 노리개 가방 등 전통 공예품이 가득 찬 곳, 일제시대에 사용됐던 가정용 8㎜ 영사기를 비롯하여,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제닉스 라디오, 대한전선 라디오, 일제 자바라 카메라 등 희귀 전자제품이 즐비한 집, 화려한 드레스와 무스탕이나 가죽점퍼 같은 빈티지 옷이 많은 개성파 가게도 있지만, 대개가 별별 물건들로 가득 찬 만물상이다.

손님들이 쓸만한 물건들을 찾아내면 주인은 어림짐작하여 가격을 던지고 흥정을 한다. 집집이 한 달에 몇 번씩 들르는 단골들도 꽤 된다. 곧 카페를 창업한다는 젊은 청년은 방금 수동 타자기 한 대를 단돈 이만 원에 구입하였다. 인테리어에 쓸 물건이란다. 주인장은 싱거 미싱도 함께 사라며 부추기고 청년은 못 이긴 채 지갑을 연다. 구석에서 어릴 때 부잣집에만 놓였던 자개농 한 짝이 먼지를 뒤덮어 쓰고 얌전하다. 배냇저고리를 개켜 넣고, 삼베 수의도 모셔 두었던 곳. 그리고 도둑 눈을 피하여 금반지 하나쯤은 어딘가에 숨겨 두었지. 한때는 그 집의 전부가 담겨 있던 물건이 이제는 골동품점에서조차 자리 차지만 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사라졌으되 기억 속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 그 시간의 뒤안길로 데려다주는 귀한 물건들이니 보고 있으면 마음이 그지없이 편안하다. 사라져가는 것이 어디 물건뿐이겠는가. 낭만이 있던 시골 간이역, 어머니 따라 구경 갔던 장터 대장간, 동네 개구쟁이가 빠졌다가 황급히 건져 올려진 동네 우물터, 서녘 해가 넘어갈 때면 허연 연기를 뿜어대던 굴뚝이 있는 집. 그리고 양복점과 다방과 방앗간과 이발관들도 자취를 감추고 있다. 사투리도 잊히고 개펄도 없어지고 지평선도 지워지고 공터도 메꿔진다. 사라지는 집, 사라지는 골목, 사라지는 마을들…. 사라지는 것들은 모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외면당한 것들의 힘은 의외로 거대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버려지고 잊힌 것들이 골동품거리 한 귀퉁이에서라도 웅장한 뿌리를 내리면 좋겠다. 원시 숲처럼 질기게 뻗어나가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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