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우석의 기후 인사이트] 빙하 위 항로, 과학이 방향을 잡아야 한다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6·3 대선이 막을 내리면서 다음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관심이 전국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여야가 팽팽히 맞서는 지역인 만큼, 각 정당은 선거 기간 동안 부산 민심을 얻기 위해 언론과 유세를 통해 다양한 공약을 내놓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주목받은 공약은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과 북극 항로 개척이다. 물류의 핵심 거점인 부산이 다시 도약할 수 있다는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매력적인 제안이기 때문이다.
북극 항로는 북극해를 따라 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새로운 해상 통로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북극해의 얼음이 빠르게 녹으면서 이 항로가 현실적인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해상 통로의 확보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현재 우리 상품이 유럽으로 가려면 남중국해를 지나 싱가포르와 아라비아해를 거쳐 수에즈 운하를 통과해야 한다. 이 항로는 시간이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여러 위험 요소도 안고 있다. 남중국해는 미중 갈등이 격화되고 있는 지역이며 해적 출몰도 잦다. 아라비아해 역시 소말리아 해적의 위협이 존재하고, 수에즈 운하는 이스라엘과 이슬람 국가 간의 충돌로 인해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결국 유럽으로 가는 기존 항로는 정치적 갈등, 해적 위험, 높은 통행료 등 여러 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극 항로는 우리에게 매우 매력적인 대안이 아닐 수 없다.
북극 항로 개척, 대선 공약으로 주목
미국·러시아 등과 국제적 협력 중요
기후변화 대응 환경적 요소도 고려
극한 지역 데이터 확보·분석 노력을
하지만 북극 항로를 실제로 활용하려면 기술적 준비 외에도 해결해야 할 정치적·외교적 과제가 많다. 항로의 대부분이 러시아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속하기 때문에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현재 러시아는 이 항로를 엄격히 통제하며 통과 허가와 통행료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안정적인 이용을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외교적 협상이 뒷받침돼야 한다. 또한 북극은 미국, 캐나다, 러시아, 노르웨이 등 여러 나라가 자원과 항로를 두고 이해관계를 얽고 있는 민감한 지역인 만큼, 국제적 협력과 규범 마련이 중요하다. 새 정부는 이러한 외교적 환경을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북극 항로를 논의할 때 환경적 요소도 간과할 수 없다. 이 항로가 가능해진 배경에는 북극 해빙의 급격한 감소가 있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해마다 빠르게 줄고 있으며, 이는 해운업계에는 새로운 기회처럼 보일 수 있지만 동시에 지구 생태계에는 심각한 경고다. 북극 해역은 기후를 조절하는 지구의 ‘냉장고’ 같은 역할을 한다. 해빙이 줄어들면 태양열을 반사하던 빙면이 사라지고, 더 많은 열이 바다에 흡수돼 온난화를 더욱 가속시킨다. 항로 이용이 늘어날수록 선박 운항으로 인한 환경오염, 생태계 교란, 해양 사고 가능성도 함께 증가할 수 있다. 결국 북극 항로 개발은 단순한 경제 논리를 넘어, 기후변화 대응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전 지구적 과제를 함께 안고 있는 고난도 방정식이다.
따라서 북극 항로를 안정적으로 개척하고 활용하려면 북극해의 자연환경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해빙의 계절별 변화, 해류의 흐름, 기상 패턴, 생태계의 민감성 등은 항로의 안전성과 직결되는 핵심 요소다. 북극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 많은 지역으로, 예측 불가능한 기상 변화와 해빙의 불안정성은 해상 운송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현재의 과학적 지식만으로는 북극 항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예측을 충분히 제공하기 어렵다. 북극의 해빙은 여름철 내내 태양이 비추고, 늦여름까지 해양이 받은 열이 최대에 이르면서 매우 불안정한 상태가 된다. 바람에 의해 쉽게 이동하고, 구름이 조절하는 복사열의 양에 따라 녹거나 늘어난다. 해빙과 바다가 맞닿은 경계에서는 대기뿐만 아니라 해양도 격렬한 흐름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상황은 해마다 다르게 전개되며, 국지적인 해빙 변화 폭을 크게 해 예측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인공위성 관측과 물리 법칙에 기반한 기후 시뮬레이션이 널리 쓰이고 있는 현재에도, 북극해의 다양한 물리 현상은 여전히 과학적으로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있다.
북극 항로 개척은 여러 요소가 얽힌 복합적인 과제다. 정부가 고려해야 할 사안도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북극 해빙을 중심으로 한 과학 연구는 중요한 축을 이룬다. 극한 지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부족한 관측 데이터를 확보하고 이를 정밀하게 분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극 항로의 시대를 앞두고, 대기·해양 학계의 발 빠른 움직임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