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진실은 어떻게 침묵 당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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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공단' 포스터. 영화제 반달 제공 '위로공단' 포스터. 영화제 반달 제공

진실은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렇게 보이도록 구성된 말인가? 그리고 그 진실을 누가 말할 수 있으며, 누가 침묵해야 하는가? 우리는 흔히 ‘진실을 밝히는 일’을 정의와 연결하지만, 실제 정치 현실에서 진실은 종종 말할 수 없고, 말해서도 안 되는 것으로 남는다.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정치의 본질이다.

한국 현대사의 특정 장면은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가보안법은 오랫동안 ‘사상의 자유’를 억압해 왔다. 노동운동이나 민주화운동 기록물은 전태일의 〈일기〉나 5·18 증언록, 노동 현장을 담은 영화들처럼, ‘이적표현물’로 규정되어 검열되고 금지되었다. 이렇게 지워진 진실은 더 이상 감각될 수도 없게 되었다. 랑시에르는 이를 “감각(적인) 것의 분할”이라 부른다. 누가 무엇을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감각의 배치가 곧 정치라는 것이다. 이 질서를 전복하는 행위가 곧 미학적 정치가 된다.

임흥순의 영화는 바로 그 감각의 전복을 시도한다. 그는 말할 수 없는 자들의 침묵을 대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침묵이 지닌 감각의 울림을 고요하게 화면에 담는다. 대표작 ‘비념’(2012)은 제주 4·3 항쟁의 기억을 다룬다. 학살의 풍경, 바닷가의 유골, 끊어지는 생존자의 목소리. 해설은 없다. 그러나 설명보다 더 깊은 ‘감각의 진실’이 다가온다.

‘위로공단’(2014/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은 산업화 속에서 버려진 여성 노동자들의 얼굴을 응시한다. 화면은 조용하고, 카메라는 울지 않는다. 말해지지 못한 진실은 침묵과 응시 속에서 감각의 틈으로 끌어올려진다.

임흥순은 묻는다. 진실은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감각되지 못한 것인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정치 현실은 그 감각 자체를 봉쇄하는 구조가 아닌가? 어떤 이들은 권력에 의해 모든 말과 행위가 철저히 조사되고 자의적으로 해석되어 법정에 서고, 또 어떤 이들은 그것에 기대어 기득권을 유지한다. 진실을 내용이 아니라 형식에서 찾고, 사람들로 하여금 “말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를 묻지 않는 사회, 그것이 오늘날 감각의 분할이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진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왜 그 진실은 말해질 수 없었는가, 왜 보이지 않았는가이다. 그리고 예술은 바로 그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임흥순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예술이란 ‘기억’이라는 형식을 통해 ‘말하지 못한 자’의 자리를 다시 열어주는 일이라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의 복원이 아니라, 진실을 ‘감각’할 수 있는 구조의 전환이다. 보지 못했던 자가 볼 수 있게, 듣지 못했던 자가 들을 수 있게, 말할 수 없었던 자가 말할 수 있게, 기존의 감각 질서를 다시 짜는 것, 그것이 예술의 정치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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