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관심이 사라지면, 존재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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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수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장

부산에 발령받아 근무한 지도 어느덧 1년이 다 돼 간다. 가장 큰 변화라면, 나훈아의 ‘애인이 생겼어요’ 가사처럼 내 마음을 빼앗아간 새로운 존재가 생겼다는 것이다. 바로 ‘소나무 분재’다. 이제는 감히, 소나무를 어떻게 다듬어야 멋진 분재로 키워낼 수 있을지 어렴풋이 감을 잡을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지난 5월 초 황금연휴 동안 돌보지 못한 탓에, 부산에 두고 온 분재들 대부분이 생사의 기로에 놓였다. 일부는 이미 운명을 달리했고, 몇 그루는 아직도 사경을 헤매고 있다.

금요일 저녁이면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싣고, 서울 집에 있는 사랑스런 짝꿍이 기다리고 있어 보러 올라가야만(?) 한다. 그 순간부터 내 관심은 오롯이 서울 아파트 베란다의 소나무 분재에 쏠린다. 안 보면 멀어진다는 말이 맞는 건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말이 더 적절한 건지, 부산에 있는 분재는 어느새 내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그러다 월요일 새벽, 다시 부산행 열차에 오르면 그제야 비로소 부산 분재들이 떠오른다. 시든 가지와 마른 흙이 눈앞에 아른거릴 때쯤이면 늦었음을 깨닫는다. 관심이 멀어지면 존재조차 흐려지는 것, 그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이 소소한 경험은, 우리가 소방안전관리자를 대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소방안전관리자 제도는 명목상 ‘있다’. 건물마다 지정되어 있고, 서류에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건물 안에 ‘존재’하는 경우는 우리가 들어봄직한 건물을 제외하고는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이른바 ‘건물의 유령 소방관’이다. 관심이 멀어지면 존재조차 지워진다는 진리는, 분재만이 아니라 제도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많은 이들은 이렇게 묻는다. “왜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민간 자율 안전관리 체계를 만들지 못하는가”라고…. 답은 이미 여러 연구와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제시됐다. 첫째, 한국 사회는 높은 법 의존성과 강한 정부 주도 성향을 기반으로 하는 구조다. 둘째, 단기성과 위주 행정문화와 결과주의는 안전처럼 지속적 관리가 필요한 가치와 배치된다. 셋째, 기업과 개인은 아직도 안전을 비용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넷째, 안전을 신뢰가 아닌 통제로 접근하는 문화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민간 자율 안전관리 체계가 상대적으로 잘 작동하는 국가들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첫째, 공공에 대한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으며, 둘째, 교육과 캠페인을 통한 장기적인 시민의식 함양이 일관되게 이루어졌고, 셋째, 정부는 최소한의 기준만 제시하고, 나머지는 민간의 책임으로 위임하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 넷째, 위반 시에는 엄정한 처벌이 뒤따라 실효성을 담보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간 정부 중심의 일방적인 캠페인과 규제에만 의존해 왔다. 단기성과 중심의 홍보, 보여주기식 행사, 형식적인 서류상 교육이 반복된 결과는 자명하다. OECD의 안전의식 조사(2023)에 따르면 한국은 회원국 중 최하위권 수준이다. 아무리 ‘캠페인’과 ‘홍보’를 해도, 자율적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정책 설계에서도 유사한 오판이 반복된다. 마치 예비군 훈련을 애국심의 발로로 좋은 교육기관을 스스로 찾아갈 것이라는 전제에서 설계하듯 말이다. 주지하듯 피교육자 입장에서 교육의 내실과 무관하게 ‘가까운 곳에서 빨리 끝낼 수 있는 곳’을 선택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이 점을 간과하면, 정책은 늘 책상 위에서만 존재하는 공허함에 그칠 수밖에 없다.

건설현장에서는 CEO가 방문한다고 하면 일단 현장이 정돈되기 시작한다. 현장 정리만 잘 되어도 사고 가능성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는 말처럼, 책임자가 직접 챙기는 현장은 그 자체로 달라진다. 한 언론에 따르면, 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경영진이 안전관리에 발 벗고 나서면서 나타난 변화라고 한다. 실효성 있는 제도 설계와 집행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소방안전관리자 제도 또한 보여주기식이 아닌 실효적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소방안전관리자는 단지 법에 명시된 존재가 아니라, 화재 예방과 화기 취급 감독, 피난 유도 등 현장의 위험을 감시하고 조율하는 실질적 책임자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야간, 주말, 휴일엔 관리자가 없고, 자위소방대 또한 실효성이 없다. 자율안전관리체계라는 이름 아래, 실상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이제는 ‘소방안전관리자가 건물에 실제로 존재할 수 있도록’ 제도와 사회의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또 다른 규제를 만들자는 거냐고. 하지만 이는 ‘감독의 강화’가 아니라 ‘실질적 존재를 위한 조건 마련’이다. 건물의 크기와 위험도에 따라 법적으로 상주해야 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비용 부담은 감면·지원 등의 방식으로 조율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진짜 책임지는 사람’이 그 공간 안에 존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관심과 책임이 사라지면, 존재도 흐려진다. 건물의 안전 또한 마찬가지다. 소방안전관리자 제도는 이대로 방치되어선 안 된다.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을 때 손을 써야 한다. 그간 나의 부재와 어리숙함으로 운명을 달리한 소나무에게 마음 깊이 애도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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