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나가사키에서 부산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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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한국해양대 명예교수

폐허에서 다시 일어선 일본 나가사키
제프리 웨스트의 ‘불멸하는 도시’ 방증

쓰시마, 초량 왜관 연결 항해 네트워크
과거 동아시아의 무역·교류 보여 줘

부산 역시 냉전 등 통해 새 위상 확보
21세기 글로벌 시야로 해양력 발휘를

지난달 중순, 일본 나가사키 대학에서 열린 학술대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해양성 기후 탓에 자주 흐리고 비바람이 쳤다. 나가사키 출신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는 그의 첫 장편으로 〈창백한 언덕 풍경〉을 썼다. 전후 나가사키의 침울한 삶이 잿빛의 도시 풍경과 더불어 서술됐다. 여섯 살까지 지낸 유년의 기억이 그를 사로잡은 듯하다. 하지만 전후의 폐허를 넘어 빠르게 성장했기에 소설 속의 나가사키는 내게 그저 날씨로만 감각될 뿐이었다. 원폭이 투하된 우라카미 평화공원을 둘러보며 의사로서 부상자를 치료하다 생을 마감한 나가이 다카시가 혼신으로 쓴 수기인 〈나가사키의 종〉을 떠올리기도 했다. 앙상한 뼈대 하나로 그 흔적을 남긴 교회는 언덕 위에 다시 세워졌고 바닥에 떨어져 나뒹굴던 종은 평화공원의 종탑에 매달려 구원의 소리를 울릴 듯했는데 도시는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거대한 야영장’이라는 이탈리아 건축가 알도 로시의 말이 실감으로 다가왔다.

복잡계 과학자인 제프리 웨스트는 사물의 체계적인 규모 변화 법칙의 특성과 기원을 그의 책 〈스케일〉을 통해 설명했으며 생물과 기업은 대부분 죽거나 사라지지만 도시는 이와 다른 법칙에 의해 지속한다고 밝혔다. 그는 생물과 기업이 탄생과 소멸의 주기를 지닌다면 도시는 소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도시가 범죄, 오염, 가난, 질병, 에너지와 자원의 소비 등 많은 문제를 지니고 있지만 지구 도시화는 이러한 도시문제에도 불구하고 피할 수 없는 방향이라는 의미이다. 그는 “인류의 미래와 지구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은 우리 도시의 운명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얽혀 있다”라고 주장한다. 확실히 그의 주장처럼 재앙이나 최후의 심판과 같은 형국이 아니고서 도시가 완전하게 사라질 공산은 크지 않아 보인다. 제프리 웨스트가 불멸하는 도시의 예를 든 게 나가사키이다. 원폭 투하로 도시 전반이 마비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다시 번창하는 데 걸린 시간은 30년에 불과할 정도로 도시는 회복력을 지닌다. 물론 지금의 위상이 원폭 투하 이전만 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말이다.

하시마 혹은 군칸지마(군함도)로 불리는 나가사키 해역의 섬에 강제노역으로 끌려온 조선인이나 원폭 피해를 입은 조선인에 관해 조사·연구하는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있다는 사실에 어떤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나의 또 다른 관심은 네덜란드 상관(商館)이 있었던 데지마를 향했다. 이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있던 바타비아(지금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나가사키 데지마를 잇는 무역 루트를 상기하는데 일본과 쓰시마, 그리고 초량 왜관을 연계하는 우리의 무역 경로와 연관이 있다. 그 시기도 17세기 초반에서 19세기 중반으로 공통된다. 물론 두 루트 사이에서 진행된 상호 교섭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활동을 비교해 볼만한 평행의 지점이 적지 않다. 상관의 위치, 통역관의 지위, 무역의 형태, 분쟁과 사고, 의식주 등의 생활 문화에서 그렇다. 특히 쓰시마와 초량 왜관의 관계는 250년이 넘게 긴밀했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통신사의 사행 기록에서 볼 수 있고 초량왜관의 일본 측 관수가 기록한 〈관수 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쓰시마를 통해 조선으로 유입된 물품이 주로 일본과 동남아에서 생산되는 은, 납, 구리, 유석, 단목, 후추, 설탕 등이라면 초량 왜관을 경유해 쓰시마와 일본으로 간 조선의 상품은 쌀, 견직물, 인삼 등이다. 왜관을 연구한 다시로 가즈이는 중국 베이징에서 한성과 왜관을 거쳐 에도(도쿄)에 이르는 실크로드와 그 역방향의 실버로드가 있었다고 고증하기도 한다. 네덜란드가 쇠퇴하고 프랑스가 성장하며 영국이 패권을 갖는 시기인 19세기에 이르면 쓰시마와 초량 왜관의 루트는 점점 약화한다. 상하이와 나가사키와 블라디보스토크를 잇는 항로를 위시해 대항로가 형성되는 데다 범선에서 증기선으로 전환하면서 해항 네트워크가 획기적으로 변환하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초량 왜관의 지위도 우위의 위치에서 종속의 자리로 퇴각해 식민 도시 부산으로 추락한다. 하지만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고 근대 해항으로 거듭나면서 해항 부산의 위상도 괄목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가즈오 이시구로가 잿빛 나가사키의 변화를 한국전쟁기로 잡은 시야를 떠올릴 수 있다. 이웃 나라의 전쟁이 나가사키를 일으키는 계기가 된 셈인데 해항의 관계는 상호 역동적이다. 부산의 변화도 한국전쟁과 더불어 시작되었다는 역설이 있다. 그만큼 냉전체제와 연관하였었다. 그러나 오늘날 탈냉전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아시아와 세계를 향한 해양력을 유감없이 발휘해야 한다. 일국 차원의 시야에 갇히지 않고 글로벌한 차원과 교섭해야 한다. 우리가 사는 도시에 부침은 있으나 결코 소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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