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독재자가 싫어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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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히너 '놀이하는 누드의 사람들'. 뮌헨 현대미술관 소장 키르히너 '놀이하는 누드의 사람들'. 뮌헨 현대미술관 소장

히틀러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건축물과 풍경화를 곧잘 그렸다. 그는 스스로 그림에 재능이 있다고 자부하면서 ‘빈 조형미술 아카데미’ 입학시험에 두 차례 응시했으나 모두 낙방했다. 학교 측은 그가 인물화 실력이 부족해서 미술가가 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평가했다. 이후 그는 독일 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 사상에 빠져들었다. 그는 자신의 책 〈나의 투쟁〉에서 빈 시절에 미술대학 진학 실패의 경험이 정치적 신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 바 있다. 히틀러가 미술대학 진학에 성공했더라면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러한 이력을 가진 히틀러의 눈에 훌륭한 예술 작품이란 전통적 아우라적 예술 작품이었다.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전통적 아우라적 예술 작품은 아름답게 묘사된 대상을 통해 관객들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주목하기를 요구한다. 이 과정에서 관찰자는 그 예술 작품에 몰입해 빠져들고 그만큼 상대적으로 현실 세계에 대한 관심을 놓치게 된다. 그리하여 관찰자는 비판적 사고를 결하게 된다.

권력을 잡은 나치와 히틀러는 구상적이고 영웅적인 형상의 신고전주의 양식의 미술을 위대한 독일 예술로 칭송했다. 고전적인 여성 누드를 통해 자연의 4가지 원소(불, 물, 공기, 흙)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치글러의 ‘4원소’가 대표적인 그림 중 하나였다. 이들 그림에서 여성들은 전통적인 르네상스와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묘사되었고, 순수한 아리아인의 신체미를 이상적으로 표현했다.

반면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전’에 작품이 내걸리면서 모욕을 받은 작가들은 모두 112명이었다. 이들은 대부분 클레멘트 그린버그가 ‘아방가르드’ 미술이라고 지칭한 모더니즘 미술가들이었다. 다리파와 청기사 등의 표현주의(에밀 놀데, 에리히 헤켈, 키르히너, 프란츠 마르크), 사회 비평 그림(막스 베크만, 오토 딕스, 게오르게 그로스), 바우하우스 예술가들(파울 클레, 바실리 칸딘스키, 라슬로 모호이너지)이 포함됐다. 그 외 마르크 샤갈, 오스카 코코슈카, 케테 콜비츠, 막스 에른스트, 하울 하우스만, 쿠르트 슈비터스, 피카소, 몬드리안 등 기라성 같은 이름이 줄줄 이어진다. 조각가로는 빌헬름 렘브루크, 에른스트 바를라흐 등이 포함되었다.

이들은 전통적 재현의 원리를 따르지 않고 형태와 색채를 왜곡한다. 나치 독재자의 눈에 이 그림들은 사람들에게 왜곡된 미의식을 심어주고 그 때문에 질서를 어지럽힐 뿐이다. 한스 에릭 노사크에 따르면 나치 집권자의 ‘본능’은 아주 정확했다. 나치 독재자가 형태와 색의 왜곡에서 찾아낸 것은 ‘자주적인 사고방식’이었다. 이 자주적인 사고방식이야말로 집권자가 제시하는 특정 이념을 공염불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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