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기록으로 그림 읽기] 예술도 상부상조해야 살아남는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 조석진 외 4인 '기명절지도'

소림 조석진 외 4인 '기명절지도(합작도)'. 개인 소장 소림 조석진 외 4인 '기명절지도(합작도)'. 개인 소장

홀로·혼자·개성 등등, 이런 말이 최우선 가치를 갖는다고 생각되는 예술도 서로 돕고, 도우려는 행동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현악 4중주’의 서로 다른 소리가 화음을 이루어야 아름답듯이, 한 장에 여러 화가가 그린 ‘합작도’(合作圖)도 조형과 공간이 조화되어야 좋은 그림을 될 수 있다.

동양화에서 합작도가 그리 흔한 것은 아니지만 희귀한 것도 아니라서, 기억하는 작품이 하나 있다. 그것은 세상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국권을 잃었던 1900년대 초반 언제인가 그려진 것으로, 길(吉)한 의미를 뜻하는 꽃과 식물, 고동기(古銅器)나 도자기를 소재로 그린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이다. 자신이 그린 기물 옆에 호(號)를 쓰고 낙관을 한 5명이 힘을 합쳐서 그렸기 때문에 합작도라고도 부른다.

오른쪽부터 보면, 괴석과 국화는 안중식(1861~1919)이, 고동기는 김규진(1868~1933), 영지와 대나무는 이도영(1884~1933)이 그렸고, 화분과 난은 김응원(1855~1921)이 그리고 가장 왼쪽은 연꽃과 게, 쏘가리는 조석진(1853~1920)이 그렸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로 그린 것인지 화제(畫題)도 없고, 작품에 대한 기록도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하지만 안중식이 1919년에 사망한 것을 고려하면 그 이전에 그려진 것으로, 여기에 등장하는 이들은 당시 장안에서 유명한 예술가들이었고, 사회지도층이었다. 조선의 마지막 화원이었던 안중식과 조석진이 합작도의 시작과 끝을 맡았다. 그리고 한 가운데는 가장 젊고 안중식의 제자였던 이도영이 담당했다. 당시 사군자 중에서 ‘난’으로는 최고였던 김응원, 이렇게 넷은 1911년에 개설한 ‘서화미술회’에서 동양화를 가르치는 화사(畫師)였다. 고동기를 그린 김규진도 중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관직에 있었고, 장안에 사진관을 처음 열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장안에서 최고의 화가이며 서예가로 꼽혔고, 1915년에 ‘서화연구회’를 개설하여 서화미술회와 쌍벽을 이루는 교육소로 성장시킨 인물이었다.

이 합작도는 어쩌면, 우리의 근대화단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서화협회’를 설립하려는 논의를 시작한 1915년 이후 언젠가 그렸을 것이다. ‘서화협회’는 1918년부터 1936년까지 민간 전람회인 ‘서화협회전람회’를 개최하면서, 1922년에 일제가 시작한 ‘조선미술전람회’에 맞서 우리의 근대화단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한 중요한 단체였다. 이런 단체를 결성하기 위해 장안에서 미술교육에 활약하는 화가들이 모인 김에 서로의 뜻을 모으는 어느 때인가 그린 것이 아닐까? 그래서 1915년에서 19년 사이에 그린 것으로 보인다.

작은 종이가 만든 좁은 공간이지만, 이 합작도를 보면서 아름다운 우주를 창조하는데 필요한 것은 협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창대하고 아름다운 우주를 창조할 수 없다. 다른 소리와 조화를 이루어야 아름다운 4중주를 연주할 수 있는 것처럼, 다른 이들과 상부상조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합작도를 그릴 수 있는 것이다.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