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후경으로 그림 읽기 2
■ 프란시스코 고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지난 칼럼(1월 16일 자 22면)에서 소개한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과 비교해, 이번에는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보자. 전경에는 광기에 차 아이를 뜯어먹는 사투르누스(크로노스)의 끔찍한 모습이 부각되어 있고 배경은 거의 까맣게 칠해져 가시적 후경이 존재하지 않는다.
고야는 1799년에 ‘제1궁정화가’로 승진하면서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다. 그렇지만 1793년경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하면서 이후 주문 받은 그림이 아니라 내적 욕구에 따라 그림을 그린다. 그가 ‘귀머거리의 집’(Quinta del Sordo)에 살면서 벽에 그린 ‘검은 그림들’ 중 하나가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였다. 이 그림은 고야가 당대의 사회, 역사, 정치적 상황에 어떻게 반응했던가를 고찰함으로써 그 의미를 온전하게 살펴볼 수 있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은 그 전날 프랑스 군인들이 스페인 저항군, 마드리드 시민들을 마드리드 인근 프린시페 피오 언덕(Principe Pio Hill)으로 끌고 가 처형한 광경을 그린 그림이다. 가운데에서 흰옷을 입고 양손을 들고 있는 사람은 마치 십자가에 묶인 예수를 연상시킨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보이는 역사의식의 관점에서 이 그림과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연관지을 수 있다. 따라서 고야의 ‘사투르누스’는 단지 신화 속의 사투르누스(크로노스)에서 멈추지 않는다. 그가 그리는 사투르누스는 스페인을 짓밟는 프랑스 군대, 그럼에도 여전히 권력 유지에 집착하면서 민중들을 억압하는 스페인의 절대군주, 나폴레옹이 몰고 온 전쟁의 참화 등으로 그 외연이 확대된다.
비너스가 바다에서 탄생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린 카바넬의 ‘비너스의 탄생’은 신화 속 이야기를 아름답게 제시하면서 감상자로 하여금 자신에게만 주목하기를 강요한다. 그리하여 이 그림은 탈사회적, 탈정치적 그림이 되며, 그 때문에 역설적으로 현존 사회관계 및 정치 질서를 옹호하는 정치적 그림이 된다. 이에 반해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는 신화 속 사투르누스를 넘어 당대의 역사, 사회, 정치적 현실 속에서 그 의미가 증폭된다. 따라서 고야의 그림에는 고야의 사회관, 역사관, 인생관 등 그의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이렇게 본다면 후경이 까맣게 지워진 고야의 그림이 카바넬의 그림보다 비록 가시적 후경은 사라졌다해도 더 깊은 (비가시적) 후경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이 그림의 가장 깊은 후경에는 작가의 세계관이 들어 있다. 따라서 겉으로 아름다운 카바넬의 그림 ‘비너스의 탄생’보다 겉보기에 끔찍한 고야의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가 더 훌륭한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