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기록으로 그림 읽기] 고통 마주하려 극혐하는 뱀 그린 20대 천경자
■ 천경자 '생태'
‘푸른 뱀’의 해(을사년)가 밝은지 며칠 지났지만, 기대보다 불안의 소리가 크다. 희망을 말하는 이들이 사라졌다. 기대와 희망보다는 고통과 시련에 과감히 마주해야 한다는 뜻인지 모르겠다. 20대의 천경자(1924~2015)는 뱀 수십 마리를 일부러 그렸다. 스스로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서다. 그녀 삶의 태도에서 지혜를 엿보게 된다.
천경자는 ‘여자미술전문학교’(일본 도쿄)에서 일본화를 배우고 귀국하던 중에 도움받은 명문대 중퇴생과 1944년에 결혼하여 아이 둘을 낳았다. 1948년에는 전남여자고등학교 교사로 취직해 형편이 좋아지나 했지만, 장결핵을 앓던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만다. 생계를 위해 핏덩이 아이 둘을 키우며 광주와 목포에서 교사로서의 일과 그림 그리기를 같이했다.
그러다 목포 전시회에서 유쾌하고 활달한 남자를 만난다. 이게 새로운 불행의 시작이다. 깊은 사랑이 긴 기다림으로 된 이유는 그가 유부남이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1950년은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나라의 존망이 위기에 있었고, 사랑하던 동생은 결핵으로 1951년에 세상을 떠난다. 약도 제대로 먹이지 못한 죄책감은 그녀에게 가장 큰 고통과 시련이었다.
1951년 어느 날, 아픔과 고통을 마비시킬 정도로 무서운 것을 찾다 광주역 앞에서 뱀을 파는 것을 기억했다. 천경자는 그 뒤로 매일 드나들며 뱀을 관찰하고 스케치한다. 고통을 잊기 위해 몸서리치도록 징그러운 뱀을 마주하며 그리고 또 그렸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생태’(1951)이다. 날카로운 삼각형 머리를 들고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푸른 뱀, 알록달록 꽃무늬로 치장한 뱀, 두 마리가 서로 엉켜 교미하는 듯한 모습으로 고통과 시련을 담아냈다. 정면을 주시하는 뱀의 머리에서 서늘함을 볼 수 있다.
지루한 휴전회담이 지속되던 1953년 3월, 천경자는 임시수도인 부산에 개인전을 열기 위해 온다. 먼저 ‘대한미협전’(부산 칠성다방에서 개최)에 ‘생태’와 ‘닭’ 등을 출품했는데, ‘생태’는 징그럽다는 이유로 주방 바닥 한 귀퉁이로 밀려났다. 이 그림이 심상치 않은 것을 안 시인 공초 이상순이 동네방네 소문내는 바람에 손님이 몰려들었다. 이어진 남포동 ‘국제구락부’(현주소는 중구 남포길34)의 개인전에는 아예 다방 문을 닫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몰렸다. 사람들은 ‘생태’라는 그림의 의미를 구구절절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챘다. ‘고통은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는 것이다’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 작품은 천경자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된다.
진짜 예술가는 고통과 시련을 회피하지 않는다. 70여 년 전 가녀린 몸으로 온 세상을 마주했던 20대에 이름없는 화가 천경자의 자세를 오늘 다시 새겨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실장